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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경찰에게 신광지서로 연행되어 2월 20일 신광면 유천리 벽유동 삼영고 개 계곡에서 살해되었다. 김진현은 가족의 사망 사실과 시선수습 소식을 대 동면 금산리 감산에 살았던 처남 이계서에게서 들었다.160) 대동면 운교리 마양 김재구(당시 44세)의 아들 김성현(당시 21세)은 사촌형 김진현의 영향으로 인민군 점령기 부역을 하여 1951년 1월 해보면 대각리 각궁 으로 피신하였다. 김재구의 가족은 2월 20일 각궁에서 첫 총성을 듣고 빨치산 사령부가 았던 용천사로 가기 위하여 오두재 방향으로 갔다.161) 오두재로 가던 김재구의 가족은 우왕좌왕하다 오후 3~4시경 아버지와 헤어졌고 김성현은 동 생인 신청인 김갑현(당시 12세)과 함께 군인에게 붙잡혔다. 석양 무렵 방공호를 따라 군인에게 연행되던 김성현 형제는 피난민 속에서 여동생 검춘자(당시 3 세)를 업은 어머니 아방례(당시 41세)를 발견하였는데/ 여동생이 울자 국군이 어머니에게 총격을 가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를 보던 김성현(당시 21세)은 어머니에게 뛰어가다 국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김갑현은 이후 아버지 김재구를 만나 내려올 수 있었다. 김갑현 가족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하였다. 냐. 영광지역 사건 1) 불갑면 사건 용천사를 중심으로 한 불갑산 남쪽에서 국군 제20연대 2대대가 빨치산과 교 전 후 주민을 총살하거나 연행한 것과 달리/ 북쪽의 영광군 묘량면과 불갑면 지역 주민은 1951년 2월 20일 영광경찰서 기동대와 함평경찰서 기동대를 피하 여 불갑산 주변으로 들어왔다. 다음날인 2월 21일 아침부터 경찰은 불갑면과 묘량면의 미수복 지역이거나 좌익 성향의 마을 주민을 영광경찰서 불갑지서162)와 묘량지서로 연행하였다. 160) “대동지서 정보형사 3명이 연행하여 신광지서를 거쳐 함평경찰서로 수송 도중 총살하 였습니다. 부모님과 해군 정보처에서 경찰 지원업무를 보았던 형님이 가서 김진현의 어머니와 저의 누나/ 김진현의 동생/ 김진현의 딸 등 4구의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누 나가 참빗을 가지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조카에게서 듣고 확인하였습니다" 참고인 이 계 서 통화보고(2008.11.7.) 161) "용천사에 빨치산 무장부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그곳으로 가 려고 하였습니다" 신청인 김갑현 진술조서 (2008.8.20.) 162) 당시 불갑지서는 불갑국민학교 강딩을 임시지서로 사용하고 있었다. [ ι % 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