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page

삼서면 학성리 원촌 주민 김영채(당시 32세)도 막내여동생 김덕례(당시 19세), 아들 김상봉(당시 14세)과 해보면 대각리 오두치로 피난을 나왔다 12되 2월 20일 오후 주변이 어두워질 무렵 김영채의 아들 김상봉은 용천사 방향 에서 들려오는 총성을 듣고 가족과 함께 총격을 피하다가 멀리면서 아버지 김영채의 손을 놓쳤다. 이후 김상봉은 막내고모 김덕례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126) 그리고 사건이 있고난 뒤 큰 고모부 정채모로부터 불갑지서에서 아버지 김영채를 보았다는 아야기를 들었다.1 2η "제가 처음 총소리를 들었던 곳은 용천사 방향이었고 군인들이 포 공격을 하 자 오두치에 었던 사람들은 피난을 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희들이 있었 던 오두치에는 실제 빨치산은 았지도 않았습니다."128) 학성리 원촌 주민이면서 김영채의 장형인 김영만(당시 40세)은 1951년 1월 말 처 이귀금(당시 43세), 동생 김영춘(당시 26세), 딸 김정례(당시 10세), 아 들 김권섭(신청인 · 당시 5세)과 함께 빨치산을 따라 오두치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오두치에 있었던 김영만의 가족은 2월 20일 불갑산 영실봉에 국군이 포탄을 쏘고 총격을 가하자 꽉난란과 함체 총격을 피하여 야동하였다.129) 무 장빨치산이 함평군 신광면 쪽으로 후퇴 130)한 오후 늦게/ 오두치까지 들어온 국군은 I개미떼처럼/ 밀려다니던 피난민을 방공호에 몰아넣고 총격을 가할 때 김영춘과 김정례는 행방불명되었다. 그 후 피난민 속에 있었던 김영만과 김권섭은 국군에게 잡혀 신광지서에서 3개월 정도 구금되었다가 돌아왔다. 았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빨치산이 나이 먹은 노인에게는 자신들의 이동로를 발설하 지 못하게 남겨놓고 왔었는데 그분틀을 마을에 들어왔던 군인들이 총살하였습니다. 어 머니도 연세가 많아서 마을에 남아 있었는데 이 일을 보고 사흘 뒤 불갑산으로 오셨습 니다" 신청인 문만섭 진술조서(2008.8.19.) 125) “어머니 서영례는 여동생 순금과 순희를 데리고 빨치산을 따라가다가 건강이 좋지 않 아 외가로 가셔서 무사하셨고/ 저는 오두치에서 1km 떨어진 곳에 숨었다가 총소리가 벚자 다음날 학성리로 돌아왔습니다" 신청인 김상봉 진술조서 (2008.9.2.) 126) 신청 인 김상봉 진술조서(2008.9.2.) 127) “고모부 정채모는 불갑면 순용리에 살았고 나중에 불갑면 산림계장을 하셨던 분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고모부께서 아버지가 불갑지서에 계시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신청 인 김상봉 진술조서(2008.9.2.) 128) 신청인 김상봉 진술조서 (2008.9.2.) 129) 신청인 김권섭 진술조서(2008.7.10.) 130) 신청인 김진현 진술조서 (2008.9.4ι 참고인 김인석 진술녹취 (2008.9.24.) - 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