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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태수y 정보현r 정호범 등인데 정보현과 정호범은 지금도 생존하고 있다)02) 이공범의 시신은 작전이 끝나고 한 달 후 가족이 수습하였으며/ 나머지 주민 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하였다. 이들 외에도 나산면에는 빨치산에 의하여 불갑산으로 끌려간 사람이 여러 명이 있었다. 그러나 빨치산에게 끌려갔다가 생환한 정호범의 진술에서 보듯 이들 청년은 사건 당일에는 무장빨치산과 같이 있지 않았다.103) 수상리 유덕 인근인 초포리 사산마을의 이국행(당시 24세)도 불갑산작전 직전인 1951년 2월 17일 빨치산이 마을에 들어와 강제로 붙잡아갔는데 2월 20일 불갑산에서 군인들에게 총살되었다고 한다)없) 다음은 빨치산에 끌려갔 던 정호범과 이문행의 진술이다. “나산면에서 빨치산에게 끌려간 사람이 많이 있어요. 오두치에서 우리는 훈련 은 받지 않고 보급사업만 나갔어요. 보름날에는 국군의 총격 때문에 오도 가도 못했어요. 사방에서 총을 쏘고 하여 피난민들은 사방으로 밀려다녔는데/ 나는 오두치 뒷산에서 군인들에게 잡혔어요. 오두치에 있을 때는 빨치산 나산면당 간부들이 움막 안에만 있으라고 하여 밖에는 나갈 수 없었어요."105) “이국행은 저의 8촌 형님인데 1951년 2월 17일 밤 빨치산에게 끌려갔습니다. 이 보다 앞서 빨치산에게 불갑산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분으로 이건기씨가 있는 데 이 분으로부터 이국행의 사망사실을 듣고 3개월 후에 용천사 아래 계곡에서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나산면 초포리에서 빨치산에게 끌려간 사람 은 저의 당숙 이재오씨도 있습니다. 이 분도 불갑산작전 때 살아서 그날 밤중에 돌아오셨습니 다."106) 또한 나산면 나산리 주민 최승원(당시 18세)은 늦가을 벼를 벨 무렵 밤에 /누군가에 의하여/ 불갑산에 끌려갔는데 토벌작전 온 군인들에게 죽었다고 한다. 최승원의 가족은 그가 빨치산에게 끌려간 뒤 국군에게 죽었다는 것을 101) “작전 이후에 살아온 사람은 청방에게 끌려가 지서에서 조사를 받고 한 달 정도 훈련 만 받고 돌아왔습니다" 참고인 정호범 진술녹취 (2008.9.24.) 102) 신청 인 정 병 천 진술조서(2008.6.24.) 103) 참고인 정호범 진술녹취(2008.9.24.) 104) 참고인 이문행 진술조서 (2008.9.1.) 105) 참고인 정호범 진술녹취(2008.9.24.) 106) 참고인 이문행 진술조서(2008.9.1.); 이건기와 이재오는 모두 현재는 사망하였다. - 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