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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제11사단 20연대 3대대는 10월 22일 함i령군 학교변 셔거리에서 빨차 산과 최초의 전투를 치룬 다읍 그날 합평을 수복하였다. 그 후 채3대대는 함 평중학교 등에서 숙영하면서 함평지역 토별작전을 전개하였으며 30일에는 제2대대와 합동으로 영광읍을 수복하였다. 3대대는 10월 22일 학교면 사거리 함평 수복작전 후 율동마을을 수색하며 주민 일부를 빨치산에 협력하였다고 의심한 나머지 그들올 연행하여 살해하 였다. 사거리 낙천동에서는 김영철의 집에 들어갔는데 일행 중 김영수가 3대 대를 연면군으로 오언하는 언행을 하자 김영수 둥을 마을 앞 논에서 살해하 였다. 또한r 수복작전 당시 빨치산은 국군과 교전을 벌이면서 신광면과 대동면 퉁 인근지역 주민들을 강채로 동원하여 보초를 셰웠다. 전투 후 빨치산은 불 갑산 방향으로 깊숙이 후퇴한 반면/ 강제 동원훤 주민은 빨치산을 따라가지 않고 전투지역 인근언 학교면 월산리 송산마을을 거쳐 대통면I 나산면 방향 으로 갔다. 이 주민들을 추적하며 월산리로 틀어간 3대대는 월산리 주민 일 부를 빨치산 협 력자로 간주하고 윤두식 등 마을의 청 · 장년을 연행하여 살 해하였다. 한편 제3대대의 다른 중대는 10월 23일 수호리 대등r 해동마을 앞 천자봉 에서 함평읍의 수산봉 방향으로 총격을 가환 후 대등마을을 수색하였다. 3대대 일부 중대는 대퉁마을에서 5명의 주민을 색출하여 살해하고/ 다른 일부는 해동마을 앞에서 일부 주민들을 살해하였다. 하지만 해동마을 뒤로 들어온 3대대의 일부 중대는 연행한 주민을 풀어주었다. 또한, 3대대는 대동면 향교리 남교마을을 수색하면서 주민 중 3명의 여성 을 데리고 여성동맹위원장을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성 들을 연행하였다. 이때 연행된 여성들은 숲쟁이길에서 살해되었다.3대대는 대통면 덕산리에서 주민 김재운도 살해하였다. 3대대는 나산국민학교에 숙영한 후 10월 28일 나산면 월봉리 주민 7명을 천주봉으로 연행하여 총격을 가하였다. 이 자리에서 6명은 사망하였고 정창 근은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한편 불갑산지역 빨치산 토벌작전을 벌이던 제2대대는 불갑산 아래언 밀 - 2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