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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성r 천주봉l 불갑산 등을 거점으로 삼고 활동하는 빨치산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 그러나 불갑산 정상인 영설봉과 용천사는 수복하지 못한 채 신 광면으로 우회하여 채2대돼와 합동으로 영황읍 수복작전을 벌였다. 10월 23일 오후 향교리 명교마을에 도착한 제3대대는/ 주면을 명륜당에 모아게 한 후 빨치산파 전투할 때 그들 측의 보초를 섰던 청 · 장년은 자수 할 것을 독려하고 일대에서 토벌작전을 벌였다. 당시 상황에 대한 참고언 정정희의 전술에 따르면, 향교리 남교마을에 거 주하였던 정순희r 정정희 자매는 10월 23일63) 총소려가 들리자 같은 마을 이 순금의 집 방공호에 숨어 있었다. 얼마 후 이순금의 집에 온 3대대는 “왜 여 거에 모여 있느냐”라고 그들에게 물었다. 이 여성들은 3대대의 질문에 “동 무’집에 놀러 옹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I동무’라는 말에 자극을 받은 3대 대는 그 자리에서 이 여성들올 끌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여성동맹에 가입 한 주민들을 찾아내라고 욱박질렀다고 한다. 또한 3대대는/ 같은 마을 이종익의 집에서는 이종익의 계모 김순임64)을/ 이계행의 집에서는 이계행의 모 김재덕65)을y 김정수의 집에서는 김정수의 모 조삼례를 연행하였다.66) 그리고 조병수의 부인은 인빈군 점령거에 향교리 여 성동맹위원장을 하였다는 이유로 조병수와 함께 연행하였다.6끼 이후 명교리에 도착한 제3대대는 사이렌을 울려 주민들을 명륜당으로 모 이게 하였다. 이때 이정수는 만세를 부르며 나왔는데 평소 언어장애가 있는 이정수가 말을 더듬자 3대대는 01정수도 연행하였다.68) 그날 오후 3대대는 이 연행자들을 남교마을 t숲쟁이길I에 모아놓고 총을 쏘아 정순희, 김재덕(이상 신청)과 김순염, 조삼례y 이정수/ 조병수 부부(이상 미신청) 등을 살해하였다. 정정희(미신청)는 같은 장소에서 가슴에 총을 맞았 63) 참고인 정정희는 자신의 자매들이 3대대에게 연행되어 언니 정순희가 살해된 날이 10월 22일이라 고 진술하였으나/ 비슷한 시간l 동일 장소에서 어머니 김재덕이 희생되었다고 진술한 신청언 이계 행 및 동일 장소에서 가족이 희생된 다른 참고인의 진술을 종합활 때 10월 23일인 희생날짜를 10 월 22일로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r신청언 이계행 진술조서J (2006. 6. 8.), 2쪽. 64) r참고인 이종익 녹취록J (2007. 12. 6.), 2-3쪽. 65) r신청인 이계행 진술조서J (2006. 6. 8.), 3쪽. 66) r참고인 김정수 녹취록J (2007. 12. 1.), 2쪽. 6η 「참고언 박계근 녹취록J (2αY1. 12 6.), 2쪽. 68) r참고인 이 장원 녹취록J (2007. 10. 12.), 2쪽. - 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