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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 중 몇몇은 총산마을을 거쳐 대동면 방향으로 몰려갔다. 그러자 3대대는 송 산ll}을올 포위하고 수책하여 마올의 청 • 장년을 끌어내기 서작하였다. 송산마올의 들머리에 있는 채갑용의 잡은 밖에서 내다보이는 곳에 았었다. 참고인 채상겨의 진술에 따르면l 그의 아버지 채감용은 그 날 오후 자신의 집 언군에서 채3패대와 빨치산야 교전하는 총소리가 들리자 아들을 솜이불로 짜놓 고 집안에 았었다. 저녘 무렵이 되자 채감용은 옆집 외양간에 있는 자신의 소에 게 여물을 주기 위하여 집밖으로 나갔다가 마을을 수색하는 3대대에재 적발 • 연행되어 집 앞 논에서 총살되었다.쩨 채감용과 같은 마을에 살았던 김동쉬는 주민을 추적하였던 제3대대가 송산마 을을 포위한 채 숙영하였다고 하면서 부대의 이동과정에 관하여 다음과 같여 진 술하였다. “그때는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y 대동y 신광면 지역에서도 주민들이 빨치산에 끌려와 죽창을 들고 야경을 섰습니다. 국군 100여 명 정도가 학다리고등학교 뒷 산까지 왔어요. 나중에 보니까 그게 화랑부대이더라고요. 국군이 오니까 이들이 후퇴하면서 미군 안테나가 세워진 산 옆을 따라 우리 마을을 지나 향교 뒤쪽으 로 갔습니다. 국군도 날이 저물어 이들을 바로 쫓아가질 못하고 우리 마을을 포 위하고 그날 밤 숙영을 했어요. 그 국군은 다음날 오전 대동면 향교리로 01동하 였습니다.“5이 참고인 김동쉬와 채상기의 진술에 따르면l 이날 송산마을에서 3대대에게 살 해된 사랍은 김동쉬의 고용언(성명 불상), 채희복, 김형택/ 박복렬y 김성만/ 추경 섭 퉁이다. 2) 함평읍 사건(수호라 대둥마을I 수호리 해동마을) 함평읍 수호리는 1구, 2구, 3구로 나누어지는데 사건이 발생한 대등 • 해동마 을은 수호리 2구에 속하며I 대둥 • 해동마을에는 무안에서 엄다면 면 소재지를 거쳐 함평읍으로 이동하려면 거쳐야 하는 14번 구(舊) 국도가 마을 앞을 관통하 고 있었다. 49) r참고인 채상기 진술조서J (2007. 12. 24• 2-3쪽. 50) r참고인 김동쉬 녹취록J (2007. 12. 28.), 5쪽. -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