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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동바을에서는 철수했다고 진술하였다. 나) 사거리 낙천동 사건 낙천동은 율동마을에서 1km 남짓 떨어져 있으며 함평읍 방향의 23번 국 도변에 었다. 낙천동에서는 앞서 사건이 얼어난 율동마을 뒤편의 야산(산16 번지)이 바로 보이지는 않는다. 3대대는 율동마을을 수색하고 주민들을 살해하고 난 뒤 오후 4시가 넘어 아랫마을언 낙천동으로 와 빈가를 수색하였다. 3대대는 김영철의 집에 들어갔는데 김영철의 동생 김영수가 국군을 인민 군으로 오언하고 ι동무/ 수고 하십니다”라고 언사하였다.3대대는 김영수의 I동무I라는 말에 집 안에 었던 주민을 빨치산 또는 빨치산 협조자로 여겼는 지 집주인 김영철과 김영수 형제r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 집에 았던 김치형 과 김대형 형제/ 윤상안과 윤상대 형제y 그리고 윤우병 등 7병을 마을 앞 논 (사거리 답 1006-7번지)에서 사살하였다. 1시간여 전까지 율동마을에서 빨치 산과 전투를 치른 제3대대는I 김영철의 집에 었던 사람들이 20대에서 40대초 까지의 청 · 장년 남성들이었고 한 자려에 모여 있는데다/동무I라는 말을 사 용환 것에 자극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상황에 대해 신청인 김찬식은 다음파 같이 전문(傳聞)증언을 하였다. u할아버지나 할머니나 자기 아들이니까 (끌려가는 것을) 막았어야 했는데 무 서워서 아무도 따라 가보지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는 마 음에서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얼마 후 총소리가 나 달려가 보니까 (끌려간 사람들이) 이미 죽은 채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44) 다) 월산리 사건 학교면 월산리는 사거리 위쪽에 있으며 마을 앞 도로를 따라 계속 북진하면 불갑산과 영광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월산리는 송정y 월봉l 송산r 신홍동f 반암마 을 둥 5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 중 월봉1 송산y 선홍동에서 희생사 건이 있었다. 44) r신청인 김찬식 진술조서j (2αY1. 9. 14.), 5쪽. - 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