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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거리 쪽에서 전투를---,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 인민군의 패잔 병인가 하여튼 그놈들이 포를 가지고 있다가/ 우리가 올라가니 쏘고 도방갔 펀 기 억 은 나요."38) 신청인 윤순자의 증언에 따르면I 3대대는 윤순자의 집으로 들어와 윤순자 의 둘째오빠 윤재형y 큰올케 최귀례/ 둘째언니 윤이금y 셋째언니 윤삼금을 끌 어냈다. 끌려 나갈 당시 윤이금은 2살짜리 유아를 업고 나갔는데, 3대대는 유아를 본 뒤 윤이금은 접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였다. 덕분에 그는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귀례는 집에서 유아가 우는 것을 그대로 두고 끌려갔다 가 살해되었다. 신청언 윤순자는 당시 최귀례가 유아만 업고 갔어도 죽지 않 았올 것39)이라고 진술하였다. 선청언 박남규는 자신과 할아버지r 그리고 자신의 집 고용인인 전경중 둥 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때 3대대가 집에 들어왔고f 뒤이어 마을에 나갔던 형 박동규가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3대대와 마주쳤다. 박동규는 3대대에게 전 경중과 함께 마을 뒤로 끌려가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지만I 전경중은 희생자 김영석의 아래 깔려 살아났다고 박남규는 진술하였다.뼈 이들 외에도 정양규/ 정종실/ 김영석y 추상섭 퉁이 마을 뒤 야산으로 끌려 갔다. 끌려간 주민 가운데 윤채형I 최귀례l 윤삼금은 산 옆의 조밭에서y 정양 규와 정종실은 그 옆 산에서 3대대에게 살해되었다.41) 윤재형은 총알이 골반 을 관통하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얼마 뒤 사망하였다.양) 신청인 정종순은 가해 군언들의 수와 인상착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 술하였다. ”국군은 마을 이곳저곳에 있었는데 100명 정도였습니다. 무서워 제대로 보지 도 못하였지만 체구가 큰 편은 아니었고 작달막한 사람들이었습니다."43) 위 정종순은/ 군인들이 주민을 살해한 그날 밤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38) r참고인 김용렴 전화진술 조사 보고J (:때)8. 2. 1.), 3쪽. 39} r신청인 윤순자 진술조서J (2αY1, 9, 14.), 3쪽. 40) r신청인 박남규 진술조서J (2( 얘 .9. 12), 3쪽. 41} r신청인 정종순 진술조서J (2αY1. 9. 13.), 3쪽. 42) r신청 인 윤순자 진술조서J (2007. 9. 14.), 2쪽. 43) r신청인 정종순 진술조서J (2007. 9. 13.), 5쪽. - 2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