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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조사 컬과 1. λ}건의 배정 개전 초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하였던 한국전쟁의 전세는 유엔군의 참전 및 인천상륙작전(1950'건 9월 15일)과 서울 수복(9월 28일)을 기점으로 반전되 었다. 국군과 유엔군의 전선이 압록강까지 이르자 중공군은 1950년 10월 16 일 한국전에 참전하였다. 이때부터 인민군과 지방좌익도 후방전선에서 기관I 시설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였다. 한국정부는 미군이 맡았던 후방지역 빨치산 토벌작전을 전담시킬 제3군단 을 창설하였고 제3군단은 1950년 11월부터 예하에 11사단을 배속시켜 호남 과 서부영남지역 빨치산 토벌작전을 담당하게 하였다. 빨치산도 1950년 9월 전남지역 전남도당 유격대를 조직하여 총사령부를 설치하고 각 지역별 유격 부대를 조직하였다. 도당은 화순군 북면 백아산 기숨에 도당 본부를 설치하 고 불갑산지구 등 6개 지구를 두었는데 불캅산지구는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 에 빨치산 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제11사단은 4단계로 나누어 토벌작전을 펼쳤는데 함평지역 수복작전11)은 그 중 제1시기(1950. 10. 7.~10. 25.)에 진행되었다. 한편 함평경찰은 10월 19일 함평읍에 들어왔다 밤이 되자 철수하였고I 이 때 빨치산은 함평읍의 주요시설과 기관에 방화하였다. 2. 사건의 정위 가. 함평 수복작전 당시 국군의 이동경로와 상황 11) 제11사단의 시기별 토벌작전 내용1)은 다음과 같다. 톨 제1기(1950. 10. 7. -10. 25.): 신규병력을 훈련하고 지역 행정기관을 복구하였으며 적정을 수집하 였음 • • 채2기(1950. 10. 26. -12 31.): 월동기를 맞아 빨치산이 저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견벽청야 작전’을 전개하였음 . • 제3기(1951. 1. 1. -1. 31.): 중공군이 참전하고 빨치산이 고봉을 근거지로 아지트를 구축하자 근 거지 붕괴에 주력함. l 제4기(1951. 2. 1. -3. 31.): 최종 토벌기로 빨치산 섬멸을 위하여 지리산l 불갑산 동에서 대규모 토벌작전과 주민 소개 작전도 병행함.(보병 제11사단I 화랑부대전사., 1986, 167쪽.) - 2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