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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어떤 곳이냐고 물으니 향교라고 하 (8η 12중대 였음. 그곳에서 포공격을 하였음. 민간 인은 의심되면 사살 후 중 · 대대에 보 고하였음. 삼랑전에서 6중대에 편성되었는데 중 10 양창규 제20연대 2007.12.12. 자택 녹취 대장은 이용배였음. 장성 수복 1주일 (76) 6중대 후 함평 해보를 거쳐 영광으로 갔음. 고창과 불갑산 전투에도 참여하였음. 중대장이 소대장이나 분대장에게 “작 김성순 제20연대 전 나가변 하루에 최소 2, 3개의 무기 11 (76) 제7중대 2007.12.13. 자택 녹취 를 탈취해 와라I 적을 사살하면 귀를 잘라 오라”라고 지시하여 한 쪽 귀만 잘라 오는 사람이 있었음. 빨치산이 산으로 갔다는 정보를 듣고 임봉섭 함평 함펑으로 들어갔음. 언민군이 강하여 12 (77) 경찰서 2007.12.5. 자택 노취 함평 수호리 쪽까지 들어갔다가 후퇴 함. 그때 수호리에서 서 00라는 경찰 이 인민군에게 죽었음. 함펑읍 방향언 수산봉에서 깃발이 올 13 정금용 함평 2007.12.6. 자택 녹취 라 안심하고 함평에 진주하였음. 설탄 (83) 경찰서 이 부족하여 미군에게 실탄을 받고 함 평에 들어갔음. 군경은 따로 작전을 하였고 경찰은 한 나진수 함평 청과 합동작전을 함. 국군이 경찰보다 14 (83) 경찰서 2007.1.18. 함평 녹취 먼저 함평에 들어가 수호리를 거쳐 대 동면으로 갔음. 수호리 희생자 중에는 좌익 활동을 한 사람은 없었음. 최정례 함평 경 찰은 1950년 10월 19일에 함평 에 들 15 2007.10.23. 자택 녹취 어갔음. 경찰이 후퇴한 후 빨치산이 (74) 경찰서 함평경찰서 등에 불을 질렀음. 다. 자료조사 1) 사건 피해자 관련 자료 가) r함평양민 학살 피해 진상조사 설태 보고서J (1997) 함평군의회에서 「양민학살진상조사특별위원회」 를 구성하여 1996년 12월 30일부터 1997년 12월 29일까지 1년 동안 한국전쟁 기간 중 일어났던 함평 군 민간인 학살사건의 피해실태를 조사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는 이 사 건과 관련하여 함평읍 수호리와 학교면과 대동변에 대한 조사결과가 수록되 어 았다. 그러나 이 자료는 유족을 대상으로 마을별 실태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전 -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