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쩨 2 부 진실규명 및 진실규명불능 쩔정 결과 총을 쏘았다. 선거, 흉하, 양렴01율 구장과 대통면 사무소 적원 장71담을 셔잘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였다. 유격대원들은 학생들에게는 총을 쏘지 않았고 미을 사람들을 몽둥이로 두를겨 폐는 것윷 목격하였다, "25)라고 증언하였다. 신청연 장기환은 “때똥면애 근무했던 큰형 장기남의 경우 출근하기 전에 농사일을 거 룹다가 출근할 옷과 션별로 박꿔 업기 워해 다λl 집으로 왔다가 여유 없어 불잡혀 λf살을 당했으며, 큰형이 만약 아침 일찍 농사얼을 거틀지 않고 대동면 사무소로 직접 출근하여 쩨속 근무했다별 총살을 당확^1 않았을 것여다 "26)라고 증언하였다. 신청인 김현석운 “1949년 9월 21일(음력 7월 29일) 션암정에서 총살당했던 부친의 시 선올 가족들여 집으로 옮겨놓였는뎌J. 다음날 유격대원들여 마을어i 다시 들어와 집예 불 을 질러 부친의 시체가 화장되었다 "27)고 증언하였다. 창고연 장돈섭은 “어렬 n혜 o}을 어른들로부터 전혜들은 바여l 의하면, 겸찰유격대원들 어 마을 청년 19명을 특별한 이유 없이 캉제로 차에 태워 함평경찰서로 연행했으며, 밤새 도록 취쪼하면셔 꽁벼와 내통혔다는 말을 할 때까져 구타화켜, 그 청년들은 나중혜는 결 을 수 없었다 "28)라고 증언하였다 참고연 장관섭은 “1949년 음력 8월 1열 장거남은 유격대원여 쏟 총에 쓰러져고 장언섭 은 유격대원이 쏟 총에 피가 쏟아져 당신 스스로 부위를 손으로 막자 ‘저새끼 봐라.’ 하면 셔 총으로 한 변 려 쏘는 것올 목격학였다, "2이라고 증언학였다- 신청연 장귀임은 “조부가 함평경찰서를 찾아가 양렴마을 앞 저수지 둑에서 경찰에게 사살당한 어플을 살려 내라며 3얼 동안 항의했으며. 01율 앞 저수지 푹여l서 사잘당할 랑 λl 피가 물 내려가듯 흘렸다캔이라고 증언하였다. 전청언 장기환윤 “져수지 묵에셔 희생된 셔제를 찾역 꽤장했던 것은 마을 셔람들이 다 아는 일이다"31)랴고 종연하였다. 여상의 증언을 종합쾌 볼 때 양림마을 주먼 28병은 10여 명32)의 겸찰유격대에 의핵 1949년 9월 21얼과 9월 22일 사이 4차에 걸쳐 사잘된 것으로 판단된다. 즉. 9월 21일에는 25) 신청인 장형기. 진술조서(2007.7.25.) 7쪽, 26) 선청인 장기환, 진술조서(때7.8.30.) 3쭉. 27) 선청인 김현식, 진숨조서 5쪽. 28) 참고인 장돈섭, 진술조셔 6쪽; 선청인 김현식, 진술조서 5쪽: 참고언 장서인, 진술조서 7쪽: 신청언 장형 거, 진술조서 6쪽. 29) 참고인 장관섭, 진술조서 3쪽i 30) 선청인 장귀임, 통화보고서(2007.9.10.) 1쪽. 31) 신청인 장기환, 진술조서 8쪽. 32) 신청인 장형기, 통확보고서(2007.10.11.) . - 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