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繼펙찌 쩨 2 부 전실규병 및 진실규명룹능 결정 결과 ” 또한, 워령l:Jl역11 01륭여 쩨겨져 었는 장금섭은 신청셔 병판예는 빡쳐 였다. 그 역유는, 장금섭은 희생자 장명섭(셔건번호 다-1270. 신청인 장일순)의 동생인데 사건 당일 행방 불I청되어 o}. 올 주면률01 본 써건 희생자로 간주하고 였져발, 그 셔션은 찾지 못핵 선청셔 룹 제출하ÄJ 못했기 때문이다. 그려고 어와 별도로 선청셔쌍 혁쟁자 수어} 포함펴여 였는 장주식 가의 고용연 김동근 은 위의 뛰령비 I청단어l 이름01 없다. 왜냐하면 그는 사건 당시 양림마을에서 머슴으로 열 하고 었었져판 거주져는 대홍편여였기 g챔문어다. 검동근은 션청연틀여 선청셔를 쩨출할 때 생명, 주소 미짱연 상태여셔 별도의 선청서를 작성하지 않고 희생자 수에만 포함시켜 쩨출한 바 였다,:1.려고 전설화해워원회의 조셔과정액셔 。l 셔건과 관련하여 사망된 것 으로 판단되어 희생자로 확정하였다 12) {At잔 2} 쩔쩔따을 앞 ‘방죽뚝섭|석거리’ 엌 휩령섹쩨 채겨전 희생짜 명단 ※ 30명 중 2명(장화석, 장영식)은 1950년 7월 보도연맹원으로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장금섭은 함펑 영:렴 사건여 발생한 날 행방불명되어 미을 주민들이 동 사건의 희생자로 여겨 여기에 이름 을새겼다. @ 한편, 민간측의 조사보고서인 『한국전쟁 전후 민간언학살실태보고서』에는 한국전쟁 여전 양렴마을 희생자가 32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례, 여것은 보도연맹원 희생자 등여 포 함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함평군에서 발간한 『한국전쟁기간민간인희생자피 해연구보고셔』에는 양림마을 희생자가 27병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 여유는 희생져 중 장 주식 가의 머슴인 김동근을 대동면 용성라 정창마을 희생자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12) 참고언 장서언, 진술조서 5쪽 : 신청인 장형기, 진술조서 5쪽; 션청연 장기환, 진술조서 4쪽. - 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