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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연좌제로 언한 유족들의 고통을 호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머니 김증산이 1951년 나산면 우치리 사건에서 59세에 5중대 군언에 의하여 사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원조회서에 '1951년 1월 14일 여자유격대원으로 아군과 전투 중 사살된 자I로 잘못 기록되어 신청인 이계준 자신과 아들의 취업에 필요한 신원조회가 문제 되었다. 이외에도 가족의 사망사실이 잘못 기록되어 취업에 불이익을 받 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성폭력의 피해자들은 그 사실을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 한 채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음이 분명하다. v. 결론 및 권고 사항 1. 결론 가. 노방주 외 248명은 한국전쟁 시기언 1950년 11월 20일경부터 1951년 1월 14일까지 전라남도 함평군 윌야/ 해보, 나산면과 당시 광산 군 본량면 덕렴리r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 및 얀근에서 육군11사단 20연 대 2대대 5중대 군인들에게 집단 총살되었으며 정남숙 외 8명은 현장에 서 살아남았으나 심 한 부상을 당했다. 나. 조사 결과 밝혀진 본 사건의 주요 경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5중대는 1950년 11월 27일 정오 무렵 광산군 본량면 덕림리 주막에 모여 았던 주민을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 외치재로 연행하여 살해하였 다. 1950년 12월 6일 새벽에 함평군 윌야면 정산리 장교마을과 동촌마 을에서,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에서 주민을 집단 총살하였으며/ 서촌마을 에서는 6일 오전 군인들야 들판을 가로절러 오다가 주민을 총살하였다. 다음날인 12월 7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윌야면 윌야 · 윌악리에서 5증대 장 권준옥의 직접 지휘 하에 주민을 집단 총살하였다. 또 12월 9일 오전 나산면 이문리 주민을 언근 나산천변에서y 같은 날 오후에는 윌야면 외 치리 주민을 해보면 금덕리 두루샘으로 연행하여 살해하였다. 12윌 31 일 해보면 대창리 성대마을 원주민과 불갑산 용천사 아래 광암리에서 - 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