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page

어느 군인이 주민들을 나오라고 독려하는 이장에게 만류하였는가 하 면I 쌍구룡에서는 앞장서 나오는 주민에게 여기 있으면 죽으니까 빨리 도망가라고 일러주기도 하였다. 또 나산면 우치리에서는 군인이 제사 를 지내는 집에 와 “여기 았으면 다 죽으니까 빨리 도망가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집단총살을 피할 수 었었다.118) 이는 중대장의 총살명령 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사병들이 중대장의 명령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볼 수 었다. 3) 가해 이유 사건이 얼어난 함평군 윌야I 해보y 나산면은 빨치산 근거지였던 불갑 산에서 가까운 지역이다. 9.28 수복이후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과 일 부 지방좌익이 불갑산과 태청산으로 입산하여 인근지역에서 물자를 조 달하며 5중대 및 경찰과 교전을 벌였다. 당시 5중대는 불갑산과 태청 산의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하여 해보면 금덕리 문장장터에 주둔하던 초기부터 월야면 외치재의 교통요지에서 경계초소를 운용하고 있었다. 광산군 본량면 덕럼리는 당시 형식적으로 수복은 되었으나 전시 계 염이 유지되고 있었다. 당시 3명이상 회합을 할 경우 반드시 군 · 경에 신고하도록 되어있던 당시 계엄 지침을 알지 못했던 덕림리 주민들은 노루고기를 먹기 위해 주막을 드나들다가 이를 수상허 여긴 5중대 군 인들에 의해 연행된 후 총살당하였다. 장교와 동촌마을의 집단 총살사건은 한새들 전투 전후로 빨치산 협 력자들이 뒷산에 올라가 징과 팽과리를 치며 만세를 부르면서 5중대원 을 크게 자극한 것이 원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 12월 9일의 외치리 사건은 5중대가 마을 앞의 광주-영광 간 도로 가 파헤쳐진 것을 주민이 빨치산과 내통하여 저지른 짓이라고 의심하 여 야기한 것으로 보인다.119) 나산면 이문리의 경우 마을 거주자 가운데 좌익활동을 하였던 주민 이 있다며 명부를 보고 선별하여 살상하였다. 증언에 의하면 쌍구룡에 끌려나왔던 성대마을 주민들은 식량 등을 가지러 원래 거주지였던 광 118) 선청인 김재겸, 진술조서 5쪽, 2006. 8. 9. 119) 신청얀 0]용현, 진술조서 8쪽, 2006.6.28; 정호현(3쪽) , 정재선(6쪽), 정병원(4쪽), 정동현(3쪽). - 1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