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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해주체 함평11사단사건의 사건 당시 현장을 목격하였거나 인근 지역에서 사 건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는 모든 신청인과 참고인들은 가해주체로 당 시 20연대 2대대 5중대(중대장 권준옥)를 지목하고 었다. 당시 중대장 권준옥의 연락병 김일호는 2000년 6월 25일 fMBC .lI 가 방영한 「이 제는 말할 수 있다 。 o사단의 사라진 작전명령서」 에서 5중대(중대장 권준옥)를 가해주체로 지목하였다.101) 위원회의 조사에서도 김일호는 당시 가해주체가 5중대라는 것을 명확하게 진술하였다.102 ) 5중대 및 중대장 권준옥이 사건의 명령 지휘책엄자라는 것은 당시 월야지서 경찰관이었던 오정언의 진술,103) 월야지서장 이계필의 증언 서/ 동3(월야/ 해보/ 나산)면 션무공작대장 윤언식의 증언서에서도 확인 되었다. 1960년 제4대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의 조사에서도 가해부대를 '5사단 20연대 5중대’(중대장 권준혁)라고 지목하였다 1따) 또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한국일보dI 1960년 5월 20일자 기사에서도 5중대장을 권준옥 대위로 보도하였다.105) 그러나 권준옥의 인사기록차드나 자력표 등에는 5중대장 근무 사실 이 기재되어 였지 않다. 본 사건 발생시기와 관련된 내용으로는 1951 년 1월 22일 '2대대 장교 권준옥/을 I연대 근무중대 병기장교 권준옥’으 로 전보했다는 내용이 전부이다. 이 기록은 1951년 1월 14일 나산면 우치리 사건과 1월 20일 나주 동창교 민간인희생사건 발생 후 권준옥 에 대한 인사조치가 이루어졌다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내용 101) 김일호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사단장 최덕신, 연대장 박기병, 대대장 유갑열, 중대장 권준옥, 김일호는 5중대 권준옥 중대장 연락병, 중대장이 대대장한테 명령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소대장한테 전달하기를 저 부락에서 도 망해 나올 때 노약자, 걸린 사람들하고 말하자변 나이 많은 노약자는 빼버리고 가운데 든 사람 중간에 든 사람은 총살범위다 그러니까 소대장한테 연락을 해라" 102) 참고인 김일호, 녹취록 6.7.12.34.36쪽, 2007. 2. 15. 103) 오정인은 “(당시 중대장은) 권준옥이라는 사렴 이었는데 한번은 회의를 하자고 해서 갔는데 한 번은 책임제를 맡겨주었는데 만약 공비로 지목받은 사람이 았으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말 했습니다"라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오정인, 진술조서 3쪽, 2006. 12. 13.) 104) 제4대 국회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 r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보고서J , 1960, 15쪽. 당 시 희생자 측 증인은 ‘권준헥’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듣는 과정에서 권준옥을 권준핵으로 뜰어서 초래된 착오로 보인다. 105) r마구 터지는 太볕殺 秘史J , Ii"한국얼보.Jl . 1960. 5. 20. - 1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