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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연대 1대대는 1950년 10월 18일 담양읍 지역과 전라북도 순창 방 면에서 토벌작전을 전개하였고 3대대는 광주/ 목포에 이어 육로를 이 용r 함평지역을 수복하고 화순지역에 주둔하게 된다. 한편 9연대는 대구에서 창설되었으며 지리산 일대에서 공비 토벌작 전을 계속하였는데 1951년 2월 초 경상남도 거창l 산청/ 함양의 산악지 역의 주먼을 집단 총살한 사건 즉 I거창사건’으로 큰 파장을 야기하기 도 하였다. 13연대는 진해시 진해여자중학교에서 11사단에 예속되었고 10월 9일 전주로 이동하여 10월 23일 연대의 전방지휘소를 전주에 두고 전라북 도 내 공비 토별작전을 벌였다.85) 1950년 10월 7일부터 1951년 3월 10일까지의 11사단 20연대의 전과 및 피해통계를 보면 사살이 6,800명I 포로는 527명으로 전과가 매우 컸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사단의 공식 공비토벌작전과의 상당 부분이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y 우리 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많이 한 함평/ 화순r 담양/ 고창y 순창 등지가 전쟁 당시 20연대 2대대 및 3대대의 작전지역이었다는 점에 대 해 눈여겨 볼 팔요가 었다. 다) 2대대의 편성과 초기작전 20연대는 1950년 9월 25일 육군본부 얼반명령에 의거 제6훈련소로부 터 20연대로 개편된 이래 같은 해 9월 28일 연대 작명 제1호에 의거하 여 제2대대(대대장 유갑열 소령)를 경상남도 진영에서 편성8이하였다. 그후 제2대대 작전보고에 의하면 최초 작전은 10월 18일 연대 작명 제10호8끼에 의거/ 전라남도 장성지구 소탕전을 전개하였다.88) 아후 제2대대의 작전 관련기록은 육군본부 작전명령89)에 의하여 미 9군단에 이양되었고 실행내용은 육군본부에서 번역한 미군 문서인 「정기작전보고」 에 수록되어 있다. 85) 보병제 11사단 r화랑약사J , 1976; 보병제 11사단 r화랑부대전사J , 1986. 참조 86) 육군본부Ií한국전쟁사료.! 59, 1987, 926쪽. 87) 광주 주둔 중인 제2대대장 육군소령 유갑열 이하 완전 1개 대대는 장성방면으토 줍동하라. 88) r장성읍 동남밖 261고지 소탕전J , 육군본부 r한국전쟁사료..11 59, 1987, 937쪽. 89) 보벽 11사단 「화랑약사 I . F17G 78쪽 - 1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