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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라”고 한 다음 얼어난 사람을 향하여 다시 사격명령을 내렸다. 두 번째로 살아있는 사람은 살려준다고 다시 일어나라고 하여 주민 몇 명 이 또 일어나자 중대장은 이들을 마을에 내려가 불을 끄라고 한 뒤 뒤 에서 또다시 사격명령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군인들에게 시체사이를 돌아다니며 11살아있는 사람은 모두 확인해서 사살하라”고 명령했다고 현장 생존자 정남숙은 증언했다}2) 신청인 정귀숙은 중대장은 한 젊은 여성을 중대본부로 끌고 가려 하 였다. 이에 그 여성의 아버지가 강력허 항의하자 부녀를 향하여 총을 쏘아 이들 모두를 살해하였다고 증언했다.33) 남산뢰 사건의 발생 원인에 대하여 주민들의 증언은 다소 엇갈린다. 다수의 주민들은 군인들이 이유 없이 들이닥쳐 집단 총살했다고 증언 한다. 5중대의 정산리 주민들에 대한 집단총살사건 소식을 들고 윌야 리l 월악리 주민들은 언제 군언이 마을에 들어올지 불안해했다. 이에 정일웅 등 주민 일부가 중심이 되어 5중대를 환영하기로 하고 태극기 를 만들다가 군인들의 총소리를 듣고는 정준채 등 몇몇은 월악리 쪽으 로 도망쳤다고 한다.용) 즉 이들은 5중대에 의한 주민학살 소식을 이미 들었기에 5중대를 자극할 특별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와는 조금 다른 진술도 있다. 남산꾀 사건 바로 전날인 12월 6일 32) 지변, 내동, 동산, 순촌, 괴정, 송계, 성주 마을 주민을 남산되에 모이게 한 후 어린 학생들은 불 을 지르라고 마을에 내려가게 한 후, 남아있는 주민들을 총으로 학살했습니다. 1차 총격 이후 살 아남은 사람은 살려준다고 일어서게 한 후, 일어선 사람을 향해 2차 총격을 가했습니다. 저는 1 차 총격에는 총을 맞지 않아서 살아있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일어나라고 할 때도 일어나지 않아 서 총을 맞지 않았습니다. 그라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려주겠다고 열어서게 한 후 3차 총격 을 가해서 모두 학살했습니다.(신청인 정남숙 진술조서, 2006. 5. 17.) 33) 군인들이 언니를 다른 곳으로 데려 가려 하니까 아버지가 군언을 가로막으면서 죽으면 죽었지 우 리 딸은 데리고 가지 못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군인이 아버님과 언니를 그 자리에서 총살 시켜 버렸다고 합니다. 군인들이 큰 아기 두 명을 어디론기- 데라고 가서 욕을 보였다고 마을에 소문이 났습니다.(신청인 정귀례 진술조서, 2006. 6. 28,) 주민 중 ‘남자들은 15세 이상 45세까지’ 모두 나오라고 해서 한쪽으로 모았고 여자들은 남편 없는 사람들을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처녀 7, 8명을 골라냈습니다. 처녀들을 골라내는 도중 5중대가 동산마을 정맹모의 딸을 데려 가지 정맹모가 군인뜰을 가로막 으며 ‘나를 죽이고 데라고 가라’고 항의하자 정맹모와 그의 딸을 폼시이l 총격하여 사살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남편 없는 사람 나오라고 해서 나갔는데 입산자 가족으로 취급당 하자 ‘남편은 결핵으로 몇 달 전에 죽었다’고 군인뜰에게 말했으나 오히따 ‘거짓발 하지 마라’며 개머 리판으로 폭행을 당한 후 섣신한 채로 15세 이상 45서l 야하의 시i란들이 모여 있던 쪽으로 끌려갔습니다. (선청인 정상수 진술조서, 2006. 7. 31.) 34) 며칠 전 군인과 공비들이 교전올 했기 때문에 잣아 가지 않으면 공비 내지는 협조자쿄 오히}칠 넨 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태극기룹 만뜸가긍 승l였습니다. (참고인 정앨웅 진술조서, 2006. 5. 20.) - 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