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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을 마을 앞에 모아놓고 여자와 노연들에게는 집으로 들어가 해 보면 문장으로 나가라고 명령하였다고 하였다. 5중대 군인들은 이어 20대에서 40대 사이의 남자들을 선별한 다음 신죽마을 앞에서 3열로 정렬시킨 후 모두 총살하였다. 군인들이 엄광진 과 김병수y 심달섭l 김종섭l 엄봉수 동 12명을 3열로 세워놓고 총을 쏘는 것을 목격22)하였다고 엄화수는 증언하였다. 사건이 일어났던 수해리 2구 신죽마을과 월곡, 양현 마을까지 합하면 70여 가구의 마을 중 절반 가까운 집들이 불에 탔습니다. 특히 신죽마을의 경우 거 의 모든 집들을 불태웠습니다.껑) 또 임양수와 김수성 동 두 명의 주민은 월야면과 삼서면 경계에 있 는 대도천에 다다른 군인들이 넘치는 뱃불을 업어서 건네 달라는 명령 을 받고 이들을 건네주자 바로 그 군인들에 의하여 총살되었다. 신죽 윌곡 양현 등 수해리 일대에서 소개작전을 마치고 오후에 중대 본부로 복귀하기 위하여 월야면 정산리 선기마을에 이르러 가옥에 불 을 질렀지만 태극기를 꽂고 환영하는 등 주민들이 적극 환대하자 인명 살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보면 금덕리 중대본부로 돌아왔다.24) 이들 마을의 사건 원언에 대해 참고인 엄화수는 “5중대가 진주할 무 렵 이 동네 주민들이 목포 무안 나주방향에서 올라온 패잔 인민군에게 밥을 지어준 것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진술하였다.강) 즉 태청산에서 10여 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마을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국군은 주민들이 빨치산에 협조하였다고 의심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태청산의 빨치산은 12월 초 근거지를 불갑산으로 이동하였다. 6) 함평군 월야면 남산봐 사건 22) 참고인 임화수, 진술조서 4쭉, 2006. 6. 7. 23) 신청인 노도출, 진술조서 4쪽, 2006. 5. 25. 24) 아버지가 대문에 태극기를 달아 놓았는데 군인들이 마당에 들어왔고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군인 이 “이놈들 봐라, 태극기를 달아놓았네”하며 태극기를 자기 총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사광은 죽이지 말고 불이나 질러버려라”고 명령을 했고, 그래서 저희 집뿐만 아니라 마을에 인 명피해는 없었지만 집과 벗단은 모두 타버랬습니다.(참고인 이행하 진술조서, 2006. 6. 28,) 25) 참고인 임화수, 진술서 2쪽, 2007. 5. 18. - 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