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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청이라고 먹고 살아야하니까 농촌보다도 도시가 먹고 사는 게 나으니까 돌아오지 않겠는가 하여간 어느 땐가는 후일 여생을 고향. 에다가 마칠란가 어쩔런가 모르겠소만 저 같 은 경우는 참 없 이살, 았지만 그래도 고향이 좋고 더구나 여기는 자작 기 때문에 넘 뭐, * * 라 않고 아직까지 이 동네에서 그만큼 서로 집안이고 이 런 것 이, ** 이해하고 사람이 귀 한줄 몰라요 사람이 집안이 적어야 거시기 한. 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귀 한 것 은 없는데 없어요 그래서 고** . 향 이와서 생활하는 것도 좋고. 김경자 그때 당 시 돌아가신 개 무덤은 없어진 것도 그러겠네요 밭: 2 8 ? 에 무덤을 만들고 그런 것 은 세월이 흘러서 장종기 아직은 지금 돌아가신 후손이 대 대에 흘렀기 때문에 아직은2 3 묘 는없어진 것은 없죠 아직까지는 대까지는 살아있으니까 대. 3 2 3 대 지나면 그때는 벌초도 않고 어쩔란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지 속 을하고 있어요. 김경자 저희가 채록하고 또 몇 가지 혹 시더 궁금하면 다시 올 텐 데: 우 리같이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한테 뭐 따 로하고 싶 은 말씀이나 아니면 유족회가 됐듯 어디가 됐 든하고 싶은 말 씀? 장종기 저는 그래요 지금 함평 유족회 방향을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 했으면 쓰겄다 이런 생각을 해요 왜 그러냐하면 군비나 도비로 해. 가지고 일언 로 만족하지 말고 그래도 후손들에게 뭣인가 냉기* ** 고 또 돌아가신 분들 희생자들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배상을 해줘야 하는 거여 근대 지금 말만 특별법 특별법 하는 거지. 누 구하나 총 대매고 나 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전남 광. . 주 연합회 유족회 모 든 임원진들은 명심하시고 끊임없이 제정 촉 진 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 지 않을까 이런 생각입니다. 김경자 당시 기억이 선명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오래돼서 연꽃 방죽: , 그 방죽에 연꽃이 예전부터 있었나요 아니면 중간에? 장종기 연꽃 방 죽연은 내 가년 년 전부터 그 때 당시만 해도 없 었: 3 4 어 요. 김경자 그냥 방죽만: 장종기 예 그때 당시만 해 도 방 죽 두룩에가 수양버들 그래서 양림이: . - 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