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page

김경자 선생님 가슴 아 픈 얘 기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손이 알 아: . 야하니까 선생님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중요한 기록이 될 거고요 그. 리 고 조금만 더 자세히 여쭙는다면 그 때일 아침에 분이 같이24 17 한꺼번에 희생당하신 건가요? 장종기 예 함평 경찰서에 강금 저는 그날 저녁에 밤새 내 내문초해: . . 가지고 무기로 때리고 했다가 곱 명 데리고 나와서 방죽 둑에서17 그 래인자 무 슨 정보를 알겠어요 뚜드린 건 잘 모르겄죠 그렇지만. . 은 살이기 때문에 거 사살하는 과정은 저 는보지 못했지만 곱1 4 17 명 이녁에 죽어있는 것을 낭창 나중 에 보고 그랬습니다** ( ) . 김경자 희생대신 다 음날 가 신보신 거군요: ? 장종기 다음날이 아니라 그 날: . 김경자 그날 봤는데 희생대신 다음에 다 떠나고 나서 나가서 보신 거: 죠. 장종기 예 예: . 김경자 그때 그 럼마을 사람들은 선생님이나 어머님처럼 감히 나 와: 보 지못했겠네요 총소리만 듣 고? 장종기 예 그러죠 감히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저 는철이 없다고 볼까: . . 요 그 와중에서도 그때만 해도 궁렁쇠가 있었어요 거 자전거 발 동. . 력 그때만 해도 궁렁쇠를 밀 고 다니면서 골목마다 댕겨봤죠 그래. . 서 인자 어느 정도는 어느 집이 불나고 어느 집 이 살아있고 그런 것 을대강 눈으로 봤죠. 그러고 그때 만해도 그래도 자식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모시게 된 것을 천만다행이다 생각해 봅니다 해보는데 그렇지만 참 아버지로 인해. 서 사망으로 인해서 당연 그 뒤로 가정사란 것 은 풍지박산이 되어 버렸죠 지금 이 집이 아니고 바로 이 집 건너 집 거 가 태성리고 거. 기 서 살면서 이 런 거시기 했는디 지금도 그 집 을보면요 당체 제가. 풍지박산이 되어가지고 형님은 형님대로 나는 나대로 다 헤어져갔 고 살 고이런 생활했는디요 제가 직장생활하면서도 연좌제로 걸려. - 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