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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배 그렇지요: . 김경자 그래서 계속 여기 계신건가요: ? 김균배 여기 있었지 여기는 수복이 되어서 해방이 될까 했는데 안: . 되 고있어 공산 치하에 있어 그래서 못 가고 있다가 피 난간 것 이. . 그 때 당시는 오고 가고 하면 밀고 들어오고 한다지만 왔다 가면 희 생 이 되 고그런 판이여 경찰이 들어와서 지키면 되는 데 못 지키고. 쫓 겨가버려 함평까지 그럼 손불면만 남아있어 밤에는 그 사람들. . . 희생이 돼버려. 뒤에 우리가 생각 되는 것 이 억울하게 죽었다 아무 조건 없이 도, 장한번 찍어주고 보도연맹 되어서 죽어버리고 보도연맹이라도 다른. 것 은아니여 남로당에 가입한다는 도 장하나 찍어주고 그 사람들이. 북한군으로 몰려서 죽었어 그런 사람이 우리 손불면만 해도 부지기. 수 고우리 마 을 만해도 다섯 사람이 되어 한 동네에서 그 전에는. . 비압이라고 해서 공산당원 물들어서 다닌 사람들이 남의 집을 들 어 올 때 좋게 들 어오냐면 신을 거꾸로 신고 들어와요 그때 당시는. . 나 간 사람만 있지 들어온 사람은 없거든. 눈 올 때는 그렇게도 하 는 과정을 봤고 어려서 상당히 내 가. . 6.25 사 변 전에도 내가 그 런저기를 했어 그러나 내 가북한의 공산당이. ‘ 다 라고 하 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우리 마을에서 억울하게만 당 하.’ . 고 심지어는 끌려가다가도 앞에서 자식이 서방이 죽어도 말 을못하, 는 세상이었다니까 앞에서 보고 눈감으라고 하고 그렇게 학살을. , . 당했어. 김경자 그 때 당 시 선생님이 사시던 마을에 인구가 대략 몇 가구정도: 였나요? 김균배 한 사십 호 되고 사람은 한 백 몇 십 명 살고 그랬어요 그런: . 데 지금은 싹 폐허가 되고. 김경자 그때 당시 마 을 이름이 뭐였어요 선생님 사시던 마을 이 름: ? ? 김균배 내 살던 마을은 청등마을이라고 했어 청등 삼남리 청등마을: . . . - 2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