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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어쩔라디냐 해서 집이 있어었요 있었는데 아니 와 가지고는. 전부 나온다 안 나오면 안 된 다 그렇게 하 고 나오라하고 불 지르고 여기 논에다가 모아놓고 뭣이 공산당 무슨 회의를 했다든가 뭣을 해 서 이유를 말을 하고 허 면 헌 디싹 모아놓고 기관총으로 이리해 부 렀어요 그래서 그때 당 시 명 이 애까지 이제 사살됐는데. 2 1 . 그때 저는 여기가 있지 않았었어요 그래서 다행히 살았제 인자 그러. 믄 우리 어머니하고 나하고 아버지하고 세 식구가 우리는 생활하고 있었어요 누나들은 시집을 가 버리고 내 가 인 자 아들로 해서 하나. 뿐이고 누나들 두 분인디 시집 가버리고 학 교 다닌다고 함평읍에가 있었제 나는 근디 그렇게 해 서 우 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와 보. 도 못하고 어떻게 소식은 인자 묘하게 들었어 들었어도 함평서 쩌. 그 산이 넓히 잔등이라고 산이 이렇게 양쪽으로 있는데 그 산에가** 딱 있다 공산당들이 군인들이 오면 포위해서 죽이고 하니까 많이 오 면서 걸어오면서 거시기 해갖고 오 고그러대 출동을 잘 못나왔어. . 그러고 통행금지가 돼 거가 그래 오들 못해 여기서도 직선거리로. . 하면 리 좀 돌아서면 리 밖 에안 된데도 오도 못하고 듣기만30 40 하고 거기서 했지만 어쩔 수도 없 고또 그래서 오 들못하고 쭉 있 다 고 개월 후에 어머니 이장을 한다고 해 서 그때사 인자 왔어요3 . 와서 보니 여기가 밭이 있는데 가묘를 써놨지 우선 그때 다급하니까, 그렇게 해서 기냥 논 도뭣도 없고 홑이불로 이렇게 해서 와서 보니. 까 얼굴도 알아볼 수도 없고 그래도 내 부모라 손등을 본께 알겄습 디다 내 부모라 정말 환장할 일이제 그래서 거시기 해가지고 이 것. . . 을 디 로옮겨 썼는데 내가 독자에다가 살 에나겠어요 우리 어** . 41 . 머니가 나를 그래갖고 참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그런 처지였는데, , 그렇게 되었으니 내가 인자 고아가 되야불고 그래서 그 말 듣 고오 지도 못하고 참 울기만 하 고 말았는데 지금까지도 내가 죽기 전에 울 어머니를 잊지를 못해요 도저히. . 그래서 이 명예회복을 할라고 애 도많이 쓰 고참 자비로 해서 제사합 - 2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