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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조사 할 때게 우리가 고발해갖고 조사를 나오고 그럴 때. 여 그때게. 김경자 지금 현재 있 는 비석이 그때 세운 비석이에요: ? 윤경중 아녀 지금 여 기있는 비석이 아니고 월야가면 있당게 제주도: . , . 군인들인데 둘이 죽어갖고 거기다 비석을 세워줬어. . 김경자 그니까 사건 훨씬 후 에 세워진 거죠: ? 윤경중 그러제 사 건후 쉽게 말해서 가 끝나고 훨 씬 후 에년: 625 2 0 지 난후에 세워졌제. 김경자 그때도 말이 많았을 것 같은데 중대 의해서 피해당한 분들이: , 5 그걸 왜 세우냐 이런 분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윤경중 세운다고 뭐라고 한 사람도 있고 또 우리가 아쉬우니까 비석: , 이라도 세워주면 지기를 그렇게 생각해준다 뭐랄까 조용해질 까 하고 이용을 한 것이제 그래서 세워줬는. 디 지금도 비석은 두 개 있어 볼 것도 없 고쬐간 해갖고. . 김경자 정부측이나 군인측 저쪽에서 좋게 봐달라고 한 거는 대상이: ? ? 윤경중 군인들한테 고 걸하고 얼마 안 있다가 군사구데타가 일어났었: 는 디 니그가 공산당을 도왔지 않느냐 그렇게 우리가 취급을 받았어 그래가지고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려고 할. 때 에 경찰전문학교 시험에 합격을 했어도 그래도 못 갔어 공. 산 당 가깝게 지냈다는 그 런 것이기로 해서 그래가지고. 김경자 다시 정리하자면 빨치산에 의해서 군 인두 명이 희생되어서: 그것 때문에 모 평주민 들도 희생이 됐다는 거 죠? 윤경중 긍게 모평 주민들 뿐 만 아니라: 김경자 다인데 일단 모평만: 윤경중 그니까 월야는 어 거가 인자 학교 있는데 안에 마을인데 거기: 가 무슨 마을이더라 거기는 군인들이 죽고 장성으로 작 전갔, 다 오다가 죽었거든 그 런게 인 자 빨치산들이 지그들이 승리 했다고 도치돼가지고 그 런게 주민들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가 없제 또 살기위해서 그 놈들하고 술 받아다 주면서 대 접. 하면서 모다 북장구 치고 농악놀이를 허 고그런 게 그랬다고, 그 마을 가 서싹 죽여부렀제. - 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