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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부락사람들 나오라 해 서 조사하고 어찌고 해서 현 장 답사도 하고 여기가 누 구식구 누가 죽었다 여기는 누가 죽었더라 그. 다음에는 누구 가족 시체가 있었다 그런 것을 임증을 해서 다. 해줬제 해주고 난 후에 얼마나 있다가. 한 일 년 남짓 있었을 거여 군인들이 중대가 중대장이 권 준. 5 옥이라고 충청도 사람인데 제 계급장을 붙이고 중대장을 할2 때 그놈이 부락민 여자들도 잡아다 겁탈하고 말 안 들으면 죽 여불고 겁탈한 후에도 총으로 쏴서 죽여불고 이러니 사람이, 살았다 할 것도 없이 당했어 어디 가서 말 헐디도 없 고 항 의. 할디도 없고 그렁저렁 해 서 시간이 얼마나 흐르고 난 후에 그, 국회의원들이 모 다 부락에까지 나와서 누구 가족이 언제 어 느 때 죽었냐 말았냐 조사를 해가고 또 경찰서로 오 라 해갖고 우 리는 쫓아다니고 그 런실정이었제 어떻게 하 도못허고 항 의. 피해는 말 한마디 못했제 그 사람들한테 그랬냐 말았냐도 못. 하고 있다가 당하고 있다가 얼마나 지 난 후 에 인 자 군인들은 올라가고 말이 많제 그 후로 여기서 저기서 부락에서 떠들고, . 일어나고 그때 그 후로 보니까 죽 은사람이 우 리마을 뿐 만아 니라 여 기밑에 마을도 한꺼번에 죽여부렀제. 김경자 그 밑 에 마을이: ? 윤경중 성대: 김경자 성대: 윤경중 대창리라고 거기는 우리보다 이틀 먼저 제사여 우리는 그 이: . 틀 후에 당했고 그 사람들은 이틀 전에 당했고 그리고 인자, 군인들이 월야로 나갔다 오다가 월야 진 달이라고 있어 장교 거기에서 군인들 둘이 죽었어 빨치산들이 쏜 총에 맞었어 그. . 런 데 인제 우리가 수월헌히 편해볼까 하고 그 군인들 비석 을 세워줬제. 김경자 그 비 석 세워준 때가 언제였어요: ? 윤경중 세워진 때는 그 후로 훨 씬한 자 그때가 여그 양민학살 사 건: - 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