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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16년 12월 31일 (음 12월 3일) 토요일(신라기원 2073년) 인체파동원리 http://blog.daum.net/tongnamu79 전화:053-588-7300 제120호 12면(월간)뱚 손을 얹으면 아픈 곳이 낫는 보석체험, 추풍령 통나무연수원 븡펜션. 문의:010-2336-7852 숭덕전은 지난 11일 전기(殿旗) 게양 고유봉심을 갖고 이날 오전 10시 정식 게양하였다. 숭덕전을 상징하는 전기(殿旗)는 지난 6월 공모를 공고한 이후 많은 작품이 접수 되었으나 마땅 치 않아 미루어 오던 중 추향대제 초헌관으로 헌작 한 대구은행 박인규 행장의 제안으로 대구지역 유명 디자인들이 참여하고 전·현직 참봉님들이수차례 협의를 가진끝에 지난달 13일 최종 확정하여이날게양을하게되었다. 숭덕전 기(旗)는 6부촌장이 시조 박혁거세를 상징하는 포태 처럼 생긴 금덩어리를 품고 있는 듯 시조왕을 떠받들고 있는 듯 한 형상으로,박씨의 시작과 탄탄한 기반으로 결속력 있게 이어 진박씨성손들을의미한다. 큰 포태(알)를 받쳐주고 있는 사람의 청색은 원을 감싸 안는 여섯명의 촌장으로 박씨를 감싸 안아 보호하고 있는 형상을 띄 고 있으며 이는 오랜 역사동안 지켜온 박씨 문중의 정통성을 보 여준다. 타원형의 포태(알)는 시조의 탄생설화 즉 난생설을 상 징화 하였으며, 이는 곧 박씨문중의 근본을 알리는 모체이기도 하다. 바탕색은 백색으로 밝다는 것은 시조대왕의 통치이념인 광명이세(光明理世) 즉 큰 빛으로 세 상을다스린다는뜻이내포되어있다. 한편 숭덕전은 전기 외에 배지 500 개를 제작하여 배포에 나섰으며, 박 동준 전참봉은 전국 성손들이 숭덕전 과 시조왕을 상징하는 배지 애용을 당부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숭덕전기(旗)게양 숭덕전배지 유고(有故)로 인해 궐위 된 시조왕릉 참봉에 박성규 前 영남고 교장이 지난 11 일 숭덕전·릉 전·현직 참봉을 비롯한 원 로 종친분들과 가족 친지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임식을 갖고 능참봉으 로서의업무를시작하였다. 이날 참봉 도임식은 오전 6시 숭덕전을 비롯한 10왕릉에 도임 고유봉심을 시작 으로 오전 11시 국민의례에 이어 도임하 는 박성규 참봉의 약력소개, 박동준 전참 봉의 환영사, 사)숭덕전릉참봉협의회 박 진국 이사장의 격려사, 밀직부사공파 훈 령종중박희춘前교수,축시낭독,꽃다발 증정,기념촬영순으로진행되었다. 박동준 전참봉은 환영사를 통해 교육 계에서 평생을 후진양성에 헌신하고, 사 회적으로 지도력을 발휘 한 박성규 참봉 님의 도임은 우리 숭덕전의 위상회복과 성손들의 화합에 큰 역할을 해 주실 것으 로 믿는다고 말하고 지금 숭덕전은 오릉 보존회의 부당한 압력과 간섭 등으로 많 은 어려움에 처해 있어 이 난관을 타개하 기 위해서는 숭덕전을 독립적으로 운영 하 는 길 밖 에 없 다 는 결 론 에 도 달 하 여 사 단법인 숭덕전보존회설립을 추진 중에 있다며 법인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법인설립이 완료되면 숭덕전 보존회는 그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대외적으로 숭덕전 및 왕릉을 수호하는 주체로서 대 표성을가지게된다고강조하고숭덕전은 자리를 탐하는 곳이 아니고, 금전적 이익 을 추구하는 곳은 더 더욱 아닌 오로지 조 상님 숭봉을 위한 성전인 동시에 조상님 을 향한 순수한 마음들을 한데모아 제례 를 봉행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뿌리에 대해생각해보고시조왕의후손임을온몸 으로느끼는산교육장이라고말했다. 이어 박성규 도임참봉은 의욕적인 목 표가 인생을 보람되게 산다는 말이 있듯 저는 오늘부터 숭덕전을 대표하여 전국 의 성손들에게 숭조 애종 사상을 바탕으 로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하고, 경로효친정 신을 함양시키고, 종친의식을 깊이 심어 주면서 내 인생의 마지막으로 사회봉사 에 헌신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 겠다며도임포부를밝혔다. 이어 박진국 이사장과 박희춘 교수의 축사, 성균관 부관장 노강 박래호 선생의 축시, 밀직부상공파 훈령종중의 원로 종 원박희길님의축시가낭독되었다. 한편 이날 박성규 시조왕릉 참봉 도임 은 지난 10월23일 전임 박철규 참봉이 부 친상으로 인해 사임함에 따라 궐위가 있 어잔여임기를하게된다. 왕릉 참봉은 조선시대 종9품의 관직으 로숭덕전은조선시대부터지금까지계속 이어지고있으며,시조 왕릉은1979년부터 참봉제를두어왕릉을수호하고있다. 19 49 년 1월 5일 경북 청도 生/ 영남대학교 공 과대학화학공학과 졸업/경북대교육대학원초 고경영자과정 수료/ 청도모계 중·고등학교 교 사(1973)/ 영남고등학교 교사·교감/ 영남중학 교 교장/ 영남고등학교 교장/ 학교법인 영남교 육재단 이사/ 계명대학교 입학사정관/ 대구지 방검찰성 서부지청 형사조정위원(현)/ 바른사회 하나로 연규원(현)/ 한국예절 다도 문화대학 부 학장/ 대구 일반계 고등학교 현장 장학협의회위 원장/ 수상경력- 교육부장관 표창/대구광역시 교육감 표창/ 국무총리 표창/ 남강교육문화대 상/ 홍조근정훈장/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외 다 수. 박성규시조왕릉참봉도임 뷺마지막으로사회봉사에헌신한다는마음으로열심히노력하겠다븣 박동준전참봉숭덕전보존회설립추진의당위성설명뷻 도임식에참석한 전븡현임 참봉님들이 함께하고있다. 도임하는성규참봉과 부인이복희여사가손자 들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뱚■박성규참봉프로필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운 귀암(歸庵) 박권(朴權 1658-1715)선생의 생애와 사 상에 대한 학술세미나가 11월 24일 원주 문화원에서 있었다. 원주문화원 (원장 : 박순조) 주최, 원주시 후원으로 열린 세 미나에는 함종한 전강원도지사, 박우순 박씨대종회 원주시지회장(전 국회의원), 박호빈 원주시의장, 학계와 문화계 인사 등200여명이참여했다. 학술세미나에서 오영교 연세대 교수는 븮박권의 생애와 정치활동븯, 강석화 경인 대 교수의 븮접반사 박권의 정계비와 18세 기 조선의 북방영토의식븯, 윤덕진 연세대 교수의 븮박권의 문학사상과 귀암집의 귀 환븯등에대한주제발표를했으며이어심 철기 연세대 교수, 김대중 강원일보원주 지사장, 신창곤 독서당 고전 교육원 교수 등이토론을벌렸다. 오영교 교수는 븮박권의 생애와 정치활 동븯이란 주제 발표에서 박권은 숙종 12년 과거에 급제한 후 30여년 동안 경상감사, 동래부사, 황해감사, 평안감사, 형조판 서, 이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등 조 선시대 최고의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부 정과 타협하지 않고 백성만을 바라보는 청빈한목민관이었다고했다. 동래부사 재임시에는 일본과의 외교문 제를 원활이 해결 외교적 역량을 보여주 었고 경상감사 때는 박혁거세 시조대왕 의 위패가 봉안된 경주 숭덕전이 임진란 때소실된것을증수복원했다. 오 교수는 성격이 강직했던 박권은 장 희빈의 오빠 장희재의 부정을 수차례 상 소하고 사대부 자녀들이 과거시험을 부 정 권력의 대물림을 하고 있다고 상소하 는 등으로 유배되거나 수차례 체직을 당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품이 곳고 청빈한 데라 일 처리를 세밀하게 하는 등 행정력 이 높 이 평 가 되 어 나 라 가 어 려 울 때 마 다 중용되어난국을수습했다. 강석화 교수는 븮접반사 박권의 정계비 와 18세기 조선의 북방영토의식븯이란 주 제 발표에서 국경지역에서 청나라 주민 과 분쟁이 자주 발생하자 숙종 12년 박권 을 접반사로 임명하고 청나라 차사원 북 극동과 협의 국경을 정하도록 하였다. 이 때 협 의 하 에 국 경 을 정 하 고 그 내 용 인 서 위 압록 동위토보(西爲鴨綠 東爲土門)이 란 정계비를 세워 국경으로 삼았다.이 내 용은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 문강이라는 뜻이다. 강 교수는 이때의 상 황으로 볼 때 토문강은 두만강을 의미한 다고주장했다. 이후 18세기 들어 북방영토의식이 강 해지면서 송화강으로 흘러드는 토문강은 두만강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과 대립되 어 오고 있다.이 문제는 학계에서 논의될 과제로 계속 남게 되었다. 박권의 국경을 정한 정계비는 지배지역 범위를 국경으 로 보 고 있 던 당 시 상 황 으 로 볼 때 국 가 간에 국경을 정한 협약으로는 최초의 일 로 의 미 가 크 다 . 윤덕진 교수는 븮박권의 문학사상과 귀 암집(歸庵集)의 귀환 븯이란 주제를 발표 에서 박권이 남긴 문집은 북정일기, 서정 별곡,귀암집 등으로모두가당 시대의 모 습을 담고 있어 문학적 가치와 함께 사료 적 가 치 도 높 다 . 북정일기는 숙종 38년 백두산 정계비 를 세 우 기 위 하 여 궁 궐 을 출 발 한 1 7 1 2 년 3월 17일부터 7월 12일 돌아올 때까지의 모든 일을 일기형태로 쓴 기행문이다. 그 러나 당시의 주변 사항과 심정, 목극동과 의 협 상 내 용 등 을 자 세 히 담 고 있 어 사 료 적 가치도 크다고 보고 있다.또한 서정별 곡은 사대부가문에서 남긴 몇 편 되지 않 은 가사문학으로 1694년 서정관의 임무 를 띄 고 청 나 라 연 경 까 지 가 면 서 주 위 풍 경을 글로 남긴 것으로 가사문학 연구에 크게 기여되고 있다. 그러나 귀암집은 남 아있지않아안타깝다. 후손인 박영구씨(작고)가 보관하고 있 었으나 지방언론사에서 기자가 빌려 간 후 되 돌 려 받 지 를 못 해 찾 을 수 없 다 . 윤 교수는 앞으로 각 문집에 실려 있는 시조 를 재구성 귀암집을 복원하는 방안이 모 색돼야한다고주장했다. /박순조명예기자(강원원주시지부) 귀암박권선생생애와사상에대한재조명이어 져 백두산정계비.숭덕전중수등업적남겨븣원주문화원 세미나에참석한종원임원진과발표교수등이함께하고있다. ▶주요약력및경력 밀성박씨대종회부회장/밀성박씨삼사좌윤공파회장/ 밀성박씨초암공파명예회장/ (사)한국서가협회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사)한국서가협회 대전충남본부 초대작가/ 사회단체 한중서화협회 초대작가/ 한국예술문화협회 초 대작가및심사위원 뱚신년휘호 長樂萬年(장락만년) 즐거움 이오래도록끝이없다.즉오래오래즐기면서잘살아봐요. 박상흔(朴相欣)書 謹 賀 新 年 한 해 동 안 성 원 하 여 주 신 성 손 여 러 분 에 게 진 심 으 로 감 사 드 립 니 다 . 새 해 丁 酉 年 은 하 루 하 루 가 소 중 하 고 행 복 이 가 득 하 시 길 기 원 드 립 니 다 . 密 城 朴 氏 銀 山 府 院 君 派 大 宗 會 顧 問 朴 炳 立 朴 道 文 朴 律 敎 朴 在 述 朴 漢 期 朴 東 廷 朴 熙 鶴 朴 元 穆 朴 元 煥 朴 泓 箕 會 長 朴 容 權 副 會 長 朴 東 根 朴 成 培 朴 彩 會 朴 泳 斗 朴 錫 太 朴 海 元 監 事 朴 昌 在 朴 在 允 總 務 朴 應 相 財 務 朴 孝 根 추원재전경-경남창녕군계성면광계리은산부원군(휘영균)의재사(齋舍)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