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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10월31일 월요일 8 (제118호) 시·군구 지부 세종특별자치시 본부(회장 종문)가 날이 갈 수록일취월장해져가고있다. 정기적인 모임과 선조유적탐방, 보학강좌 등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 이다. 지난 15일 경주 숭덕전을 비롯 10왕릉 참배와 박정희 대통령 생가 방문은 제2도약의 정점을 찍었다하겠다. 이른 새벽 각 지역에서 출발 조치원 읍내에서 출발한 이날 선조유적 순례단 30여명은 경주에 서 기다리고 있는 본보 박상섭 편집국장의 안내 로 숭덕전을 참배하고 오릉과 알영정, 나정과 각왕릉을차례대로참배하였다. 숭덕전참배에는희옥숭덕전사무국장의창홀 에 따라 종문 회장의 분향으로 참배가 이뤄졌으 며,동준 전참봉은 이들을 맞이하면서 기념으로 ‘신라왕손 만파일원’의 휘호를 써 건네며 환영 의 뜻을 전달하고, 숭덕전의 현황을 설명한 후 춘추대제 등 숭덕전 행사에 깊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특히 지마왕릉 참배후 근처의 ‘포석정에 대한 진실’을 설명할 때는 모두들 깊은 관심을 보인 가운데 경애왕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올바로 잡 아 줄 것을 건의하고 이번호에 그 내용을 실어 줄것을요청하기도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본부는 2012년 7월 1일에 충 청남도 연기군을 폐지하면서 인근의 충청북도 청원군과 충청남도 공주시 일부를 병합하여 우 리나라에서 17번째 광역자치단체로 출범하였 음에도 종친회는 체재를 정비하지 못하다 지난 해 10월 조치원읍 침산리 소재 ‘돈파티’ 식당에 서 창립주비위원회 첫모임을 갖고 지난 4월 창 립총회 를갖고공식출범했다. 종친분들의 참여를 이끌어와 현재 100여명 의 종친분이 가입신청서를 접수하면서 큰 힘을 얻게되었다. 발기인총회와 창립총회 때 본보에 보학강의 를 요청하는 등 정체성을 찾는데 주력하여 현재 100여명의 진성회원이 참여하면서 크게 활성화 가 되고 있어, 밥만 먹고 헤어지는 종친회를 탈 피하여 무엇인가 하나라도 배워간다는 목표를 설정하고있어눈여겨볼만하다. 한편 이날 행사에 앞서 종문 회장은 버스에서 인사말을 통해 우리 모두는 한 핏줄을 타고 태 어났다며 혈족임을 강조하고 숭덕전 제향에나 기타 행사에 참여를 해 보았지만 한가롭게 들러 보며 연혁 등 수호관계 사실을 알 수 없었으나 이번에는 한빛신문의 박상섭 국장이 현장강의 를 하게 되어있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 했다. 세종특별자치시본부경주10왕릉참배 나서 박정희대통령생가들러귀가븣뿌리를찾아소속감심어줘 숭덕전참배후기념촬영을하고있다. 박동준 전참봉(左)이 종문 회장(右)에게 ‘신라왕손 만파 일원’휘호를전달하고있다. 포석정에서 927년, 신라말기 55 대 경애왕(景哀王)은 왕비, 신하들 과 함께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 고 시 를 짓 는 놀 이 를 즐 기 던 중 , 후 백제 견훤(甄萱)의 군대가 쳐들어 와, 경애왕은 결국 견훤에게 죽임 을 당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 가알고있던사실이다. 우리나라 사적 1호로 그 모습이 전복껍질 같다고 전복포자(鮑)를 써 포석정(鮑石亭)이라 불리고 있 다. 포석정은 지금까지 신라왕들의 놀이터로,둘러앉아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술잔이 멈추면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시를 짓는 놀 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포석정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제기 되고있다. 신라의 성지(聖地)인 경주 남산 의 서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포 석정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가로 5m, 세로 10m 정도 크기의 인공수 로로이뤄져있다. 삼국사기에 927년, 음력 11월, 겨 울에 견훤의 군대가 왕견을 쳐들어 왔다. 이때 왕은 왕비 궁녀들과 포 석정에서 잔치를 벌이느라 적이 오 는 줄도 몰랐다는 기록이 그 근거 였다. 음력 11월에 흐르는 물에 술 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 (流觴曲水) 놀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아무리 왕이 정치 에 등한히 해도 적이 지금 쳐들어 오는데 거기서 놀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포석 정이 있는 남산은 130여 곳의 절터, 400여 개의 불상과 탑들이 들어서 있는신라의성지다.따라서 포석정 을남산성지의일부로이해해야한 다는주장이나오고있다. 주변엔 신라 건국과 역사에 관련 된 수많은 유적지들이 자리하고 있 다. 포석정에서 500m여 떨어진 곳 에 있 는 나 정 (蘿 井 ) , 신 라 의 첫 임 금인 박혁거세가 탄생했다는 우물 로 신라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창림사터,박혁거세가 세운 신라의 첫 궁궐터라는 창림사지도 포석정 근처에 있다. 조선 초기에 없어져 지금은 삼층 석탑과 쌍거북모양의 비석대인 쌍귀부만 남은 상태다. 포석정에서 불과 1㎞ 거리에 위치 한 오릉(五陵)은 박혁거세를 포함 한 신라 4명의 박씨임금과 박혁거 세의 부인 알영(閼英)왕비의 무덤 이있다. 남산은 박씨에게 상당히 중요한 발상지, 그래서 불교가 수용되고 난 다음 단계에 남산일대에 전통적 인 신앙의 중심지가 불교가 들어오 고 나 서 불 교 성 지 로 바 뀌 면 서 신 라의 대표적인 신성(神聖) 지역으 로여겨졌던것같다. 삼국유사에 신라 49대 헌강왕 (憲康王)이 포석정에 갔는데 남산 신이 임금 앞에 처음 나타나 춤을 추었다. 신하들은 신을 보지 못하 고 왕만이 신을 보았다는 것이다. 신이 나타났다면 그곳은 이미 이전 에성스러운공간이었다. 헌강왕이 포석정에서 남산 신을 만났다는 것과, 또한 이곳에서 행 해진 제사 의식을 통해 신과의 교 류가 이뤄졌음을 뜻한다. 경애왕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달라는 제 사를 지내기 위해 포석정에 간 것 이 아니었을까? 당시 제사 의식이 호국 제사인 팔관회와 관련이 있다 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신이 호 국 제사는 고려 때까지 이어졌는데 매년 11월에 개최됐다. 견훤이 침 입시기와같다. 포석정에서 서쪽으로 불과 2-3 백m 떨어진 곳에 절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건물에 사용된 초석, 석 재와 기와 조각들은 당시 외사(外 寺)로 추정되는 포석정의 규모를 짐작케한다. 고려의 왕건에게 구원군을 요청 해 놓은 경애왕은 포석정을 찾았 고,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중 견 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닐까? 포석정은 호국제사를 지내는 성지 였던 것이다. 지금도 동제(洞祭) 당제(堂祭)를지내고있다고한다. 븮유상곡수(流觴曲水)븯 는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것을 말한다. 이는 중국 동진 시대 의 명필가 왕희지(蘭亭이라는 곳) 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최근 유상 곡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제기되 고 있다. 구곡으로 흐르는 물가에 술 잔 을 띄 우 고 술 한 잔 먹 고 시 한 수 낭독하고, 자연의 우주에 대한 인간의 유한함을 느끼고, 살아 있 음에 대한 감정을 시로 표현해 후 대에 남기는 청류의 한 방법이다. 왕들은 정치의 도를 수양하는 한 방법으로했다. 일본 가고시마의 센간엔. 매년 3 월 첫째 일요일에 유상곡수 재연 행사가 열리고 있다. 헤이안 시대 중국으로부터전래됐다고한다. 유상곡수는 술을 마시며 시를 짓 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계사 또 는 계욕( 긔浴 )이 라 는 제 사 의 식 과 함께 이뤄진 성스러운 의식이었던 것이다. 포석정에서 (몸을 씻는 계 욕 장소로 추정되는 웅덩이 확인) 호구제사가이뤄지던성지다. 신라가 논농사를 많이 하면서 오 랫동안관개배수연구를많이하고 자연흐름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가포석정이라는기술도나왔다. 화랑세기 필사본에 포석정을 포 석사(鮑石祠), 즉 사당으로 표현해 놓은것을볼수있다. 국가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을 모셔 놓는 사당으로 봐야한다. 건 물터와 수많은 토기, 기와 조각들 이 확인된 것이다. 그 중엔 포석이 라는 글자가 쓰여진 명문 기와도 있었다. 와당류(瓦當類), 제기류 (토기, 술잔 등)의 출토는 특히 주 목받았다. 이처럼 포석정은 신라왕들의 놀 이터가 아니라 성스러운 의식이 행 해지는 신라의 성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석정은 신라왕들의 놀 이터로,경애왕이 견훤이 쳐들어오 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놀이를 벌이 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한 곳으 로 인식돼 왔다. 삼국사기나 삼국 유사가 포석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고려 건국의 정당성을 얻기위한것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유상곡수 터 만을 가지고 포석정을 이해해왔다. 그러나 최근 포석정이 놀이터가 아 니라 호국 제사가 행해지던 성스러 운 공간이라는 해석들이 제기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발견되 면서 포석정은 새롭게 태어나고 있 다. 지금은 이 유상곡수터만 남아 있지만 신라시대 포석정 주변엔 수 많은 건물들이 있었고, 남산을 포 함한 포석정 일대가 하나의 거대한 성지였다는 것이다. ▶본 기사내용 은 지 난 2008 년 10월 호 2면 에 게 재 했던내용입니다. 뱚경애왕과포석정(鮑石亭)의진실 모든 기록에 의하면 927년 11월의한겨울, 景哀王은 포석정에서 잔치 도중 견훤에게 핍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927년 1월 왕건과 경애왕이 협공을 통해 백제 용주를 공격했으며, 그에 대한 복수로 견훤이 여덟 달 만에 거병했던점, 영천에서는 두 달간 경애왕 교체를 선포했고,반대 세력의내응을 부추겼던점,또 당시 신 라 내의왕권 반발 세력 등을 종합할 때,경애왕의최후 를 전한 잔치 기록에는 의문이 제기된다.즉 이 여덟 달 과 두 달의시간에 대한 주목이 새삼 필요하며 견훤의 전격적경주입성과포석정사건배후에는일정한내응 세력의존재도지울수없다. 927년 후삼국의미묘한 역학 관계에서 배태된 포석정 사건은 직전, 직후 상황의 연장선 에서 조감될 필요가 있다. 왕건의 공세와 견훤의 반격 와중에 근품성(近巖城)전 투,공산동수전투,고창전투가발생했고포석정사건 과 경애왕이 이 긴박한 변전과 얽혀 있음이 주목된다 . 모쪼록 이러한 의문들을 파헤친검토가포석정사건을 해석함에있어단서로보태지길바라며수천년이어진 왜곡된역사를다시한번짚어보고자한다. 뷺포석정(鮑石亭)은신라가망할때의놀이터가아니었다뷻 포석정-경상북도경주시배동454 본보 박순구 대표이사 발행인 은 지난 10월 1일 강원 삼척(박 형배), 동해(박성수)시지부 명 예기자를 신규위촉하고 종중문 화 발전에 기여해달라고 주문했 다. 이번 명예기자 신규 위촉으 로 해당 지역의 종친회 동정과 선조님의 대한 행장을 자세히 소 개 할 수 있 을 것 으 로 기 대 하 고 본 보 활 성 화 에 도 크 게기여할것으로보인다. 그리고아직명예기자가추천되지않은각시군지부 와 관향조 종친회에 명예기자 추천을 요청하는 공문 을 지 난 추 석 전 발 송 한 바 있 어 빠 른 시 간 내 에 추 천 이 이루어질수있도록당부했다. △삼척시지부 성명 박 형 배/ 삼척시오십천로(성북동)/ 전화 010-9315-99 93/ 삼척 근덕농업고등학교 졸/ 주요 경력-삼척시 성내동 새마 을협의회장, 삼척농협대의원·이사, 삼척시새마을협의회장,강 원도 새마을 협의회장, 새마을 중앙협의회 감사, 2016 파사왕릉 추향제례 종헌관 / 포상 - 한 국양 봉 조합장 표창장 3 회, 삼척시 농어업 인 대상, 새마을 중앙회장표창, 산 림청장 표창, 행정 안전부장관 표창 2회, 대통령 표창 등. △동해시지부 성명 박 성 수/ 동해시 발한로/ 전화 010-6668-7506/ 삼척마 이스터고등하교/ 강원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자격 - 행 복상담사1급,효·예지도사자격증1급,인성교육상담사1급.경 력- 동해경찰서송정지서·정보1계장, 동해경찰서교통·경무·경 리·정보계장(경위), 삼척경찰서 청문감사관·정보보안과장(경 감), 동해경찰서 정보보안과장·청문감사관(경정), 현)한국상담 교육원동해시지회장. 포상 - 녹조근정훈장, 대통령, 국무총리, 행안부장관,경찰청장표창등30여회수상. 본보,강원삼척븡동해시지부신규명예기자위촉 명예기자가없는시군지부및관향조종친회의추천당부 박순구발행인 박형배명예기자 박성수명예기자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