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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7월31일 일요일 5 (제115호) 관향조 종친회 밀성박씨 전국청년회(회장 부돌)와 여 성회(회장 재숙)는 지난 2일 선조유적지 순례행사를 갖고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 와발전을이루는계기를만들었다. 경남 밀양 밀성재에서 아침 일찍 출발 하여 전남 고흥의 규정공 后 참판공파 고 흥입향조(휘 맹동) 묘역 참배를 시작으 로 숭양사 참배, 소록도 방문일정으로 시 작된 이번 행사에는 회원 70여명이 참석 한가운데진행되었다. 고흥군 두원면 대산리 입향조 묘역에 서는 정규 종친회장의 안내로 계획된 참 배를 마친 가운데 정규 회장은 참배 후 전 국에서 찾아온 청년회와 여성회원 모두 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고흥 입향 약 사를 간단히 설명하고 이번 순례단을 맞 으면서 많은 걸 배우게 되어 고흥지역 청 년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며 격 려를아끼지않았다. 이어 대산면 학곡리의 숭양사 참배는 숭양사 보 존회 형상 회장의 안내로 참배를 마치고 준비한 다 과와 함께 잠시 정담을 나누는시간을가졌다. 박형상 보존회회장은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주어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청년회와 여성회 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 며 숭양사의 연혁과 수 호과정을 설명하고 뿌리 의 소중함과 추원보본의 정성을 다해야 하는 후손으로서의 역할 을강조했다. 이어 오릉보존회 고흥군지부 재희 지 부장은 청년회원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고흥군지부는 2개읍 14개면 분회가 나름 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고흥군지부가 함 께 발전하고 있다며 소개하고 선조유적 순례는 자기계발에도 목적이 있다며 오 늘 하 루 일 정 을 무 사 히 보 내 고 먼 길 안 녕 히귀가하길바란다고하였다. 규정공 후 참판공파(휘 눌생) 고흥 입 향은 참판공의 현손으로 칠원현감을 역 임한 휘 맹동으로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두 동생(중동, 계동)과 함께 고흥으로 은 둔하기에 이른다. 그 시기는 기묘사화가 일어난 1519년으로 추정된다. 동생 중동(號 蘿菴)은 1498년 진사시 에 오르고, 1519년(己卯)에 문과에 올라 형제분이 넓은 세상에서 여유로움을 찾 을 수 있 음 에 도 이 를 물 리 치 고 형 의 제 의 (고흥은둔)에자취를함께했다. 라암공(휘 중동)의 손자 은춘(殷春,호 東溪), 증손자 응수(應秀, 호 梅軒-은춘 의 아들)는 임진왜란에 큰 공적을 세우는 등 입향 500년을 보면 지방 토호세족으로 서 애민(愛民)을 구현하여 많은 성씨들 로부터칭송을받고있다. 숭양사는 헌종 기유(己酉, 1849년)년 에 흥양현(현 고흥군)과역면 가산리 의 봉암사(鳳巖祠)에 규정공(휘 현), 동계 공(휘 은춘), 매헌공(휘 응수) 3位가 옛 흥양 출신 충신 열사들과 함께 배향 되었 는데, 1868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 어 향사가 끊겼다가 1935년(乙亥) 후손 들의 종의로현 위치에 사당 3칸,강당(敬 慕齋) 4칸, 신문(忠義門), 외삼문(興慶 問), 고직사 3칸을 창건, 숭양사(崇陽祠) 라 이름하고, 규정공(휘 현)을 주벽으로 전서공(휘 침) 참판공(휘 눌생) 동계공 (휘 은춘) 매헌공(휘 응수)을 배향 하여, 매년 춘 추로 정일(丁日)에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향사를 받들어오다, 60여년의 풍상으로 사우가 퇴락하여 1997년에 지 방정부 지원금과 후손들의 성금으로 대 지를 매입 확장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중 건(重建)하여 매년 음력 3월 1일에 향사 를 올 리 고 있 다 . 한편 이날 행사에는 전날까지 폭우가 쏟아져 많은 회원들이 우려하였으나 오 전부터 참배를 마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선조님의 가호(加護)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다음 마지막 행선지인 소록도 를 방문해 환자들 의 애환과 아픈역사를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자평 하고다음기회를기약했다. 한편 고흥문중에서는 고흥의 특산품을 담은 선물세트와 참판공 녹동문중 박성 삼 총무(효성농수산, 061-842-0011)가 직접 생산한 수제 멸치액젓을 선물로 제 공해 참가자들에게 일가 정(情)을 함께 선사하였다. 밀성박씨전국청년회·여성회선조 유적순례가져 전남고흥숭양사븣임란의병으로충(忠)을실천,입향500년토착성씨자 리매김 고흥입향조묘역을참배하고있다. 고흥문중 정규 회장이 묘역과 입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옆은 종성 감사는 이날 순례단 안내를 맡아행사를더욱 빛냈다. 박재희 회장 박형상보존회장 박성삼 총무가 가업으로 직접 생산한 수제액젓 밀성박씨고양선조원당종중회 집행부 는 지 난 6 월 1 9 일 경 기 도 수 원 에 있 는 밀 성박씨 경기도 본부 임원회의에 참석하 여 각 지 부 지 부 장 및 임 원 3 0 명 이 모 여 도본부 발전을 위한 토론을 갖고 점심식 사를하고는해산하였다. 한편 7월 3일에는 밀양 소재 경모재에 서 개최되는 충헌공파 청년회 정기총회 에 봉준부회장과 상준이사가 참석하여 중시조 묘역벌초를 하고 총회를 열어 사 업보고와 감사보고를 들은 다음 임기만 료로 끝나는 감사선출에 본 종중의 재정 부장이며 청년회 이사인 박상준 이사를 차기 감사에 선출하고 모든 회의를 마치 고 중식을 함께 하고 해산 후 무사히 귀경 하였다. /박봉준명예기자(경기도고양시지부)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회 경기도본부임원회의븡경모제청년회定總참석 밀성박씨경기도종친회임원회의광경. 충헌공파청년회에참석임원진과 함께했다. 지난 2008년부터 태안박씨 대종회장을 맡아 ‘찾아오는 종회’를 만들겠다는 신념 으로 크게 활성화 시켰던 준병 회장이 지 난 3일 숙환으로 영면, 빈소가 마련된 경 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 례예식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 은조문객이찾아애도했다. 박 회장은 1933년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현 대사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부딪 히며 살아왔다. 1950년 대전고등 하교 2학년시절 6.25전쟁이 발발 하자 구국의 일념으로 학도병으 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고, 전 쟁이 끝나가던 1953년 육군 병장 의 신분으로 4년제 정규 육군사 관학교 12기로 입학하여 1956년 졸업 및 육군소위로 임관하면서 직업군인 의 길로 ‘이등병에서 육군대장’까지라는 신 화 를 남 긴 3 4 년 간 의 군 생 활 을 시 작 하 였다. 강원도 화천북방 9사단 소대장을 시작 으로, 제1군사령관 전속부관시절에는 당 시 5.16 군사혁명에 반대하던 이한림 사령 관을 끝까지 보좌하다가 한 달간의 옥고 를치르기도하였다. 1968년 7월 강원도 인제 지역의 12사단 대대장 시절에는 독창적인 작전활동으로 침투하던 적 7명을 지뢰매설로 일망타진 하는 전과를 올리는 등 야전 군인으로서 그명성을떨쳤다. 1979년 동기생중 선두로 소장으로 진급 되어 제20사단장으로 보직되어 재직 중 1 2.12사태와 광주민주화운동 등 역사의 소 용돌이의 한가운데서 있었으나 항상 올바 르고 정정당당한 처신으로 사후 재평가 과정에서도 한 점 부끄럼도 없을 뿐만 아 니라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정확한 판단 으로소신을높이평가받은바있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시위를 진압 하라는 상부지시를 받고 투입되었으나 강 제적인 지압이 아닌 대민봉사로 시위강도 를 낮추어 시민들로부터 크게 호응을 받 으면서 당시 도지사 표창장을 받기도 하 였다. 1985년 군의 최고 계급인 육군대장으로 지급하면서 34년 간의 군 생활을 명예롭 게마무리하였다. 군생활 기간 동안에도 늘 책을 가까이 하는 학구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육사 졸 업시에는 군사학 성적이 가장 우수한 생 도에게 주어지는 ‘智賞’을 수상하였고, 우 수졸업생으로 선발되어 서울대 사학과에 위탁교육을 받고, 육사 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육군대학과정에서 는수석으로졸업하기도하였다.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이후 제12대 국 회 의 원 에 자 의 반 타 의 반 제 2 의 인 생 인 정 치인의길을걷게되었다. 당시 고향인 충북 옥천,보은,영동 지역 구에 출마하여 68.4%의 기록적인 득표율 로 당선되었고, 이후 13대 및 14대까지 3 선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국회와 각 정당 의 주요 직위를 역임하면서 현대 우리 정 치역사에굵직한발자취를남겼다. 1986년 민정당 국책조정위원장을 거쳐 87년민정당사무총장,국회보건복지위원 장, 88년 민정당 사무총장으로 3당 합당을 주도하여 성사시키고, 민자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자민련에서 사무총장 과부총재직까지역임하고2002년12월정 계를 은퇴하면서 우리나라 정치가 권위주 의시대에서민주주의시대로진입하는과 도기에나름대로주어진역할에최선을다 했다고소회를밝히기도하였다. 정계은퇴 후에는 지난 2012년까지 서경 대학교석좌교수로후진들에게 ‘인간관계 론’을 가르치면서 제3의 인생을 개척하는 노익장을 과시한바 있으나 갑자기 찾아온 병마에는이기지못했다. 고인께서는 화랑무공훈장,보국훈장 천 수장, 보국훈장 통일장, 보국훈장 국선장 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이등병에서 대장 까지’,‘군인의길,정치인의길’이있다. 한편 지난 5일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식 에도 옥천, 영동, 보은 지역민들이 국회의 원시절을 잊지 못한다며 많은 분들이 찾 았으며, 대종회 진섭 총무를 비롯한 임원 진 또한 안장을 지켜보며 고인의 넋을 기 렸다. 대종회 진섭 총무는 지난달 25일 병문 안을 갔을 때 다음날 퇴원한다면 기뻐했 는데 갑작스런 부음소식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며 고인께서는 8년간 재임중 대 종회에 많은 일들을 해오셨는데 앞으로의 일이큰일이다며고인을회상했다. 태안박씨 대종회는 오는 10월 향사 및 총회까지 회장을 공석으로 남기며 고인을 애도하는 기간을 가진 뒤 후임회장을 추 대할예정이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태안박씨대종회준병회장영면 향수83세븣국립대전현충원제2장군묘역,육사12기 제20사단장보안사령관육군대장예편3선국회의원, 80년대신군부일원중유일하게무죄선고받아 대종회진섭 총무를비롯한 임원진이 빈소를찾아헌화분향 하고있다. 밀성박씨 좌상 공 후 고직당공 종중은 지난 10 일 전 북 순 창 군 순창읍 문화의집 2층 회의실에서 효자 고직당공의 후예로 종적으로 는 부모와 나라 를 사랑하고 횡 적으로는 일가친척끼리 서로 돕고 사는 효우세가(孝友世家)을 따를 것을 다짐하 며창립을선언하고공식출범했다. 이날 창립총회는 화석 좌상공파 대종 회장, 순옥 무은공종친회장이 임석(臨 席)하고,고직당공 종원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근호 총무의 사회로 진행된 가운 데 창립취지문 채택, 정관제정, 임원선 출,기타토의순으로진행되었다. 행순 창립추진위원장(이하 위원장)이 의장으로 창립취지문을 채택하고, 상급종 친회(좌상공) 상섭 총무를 임시의장으로 추대하여 행순 위원장을 초대회장으로, 종남,규해일가를감사로각각선임했다. 행순 회장은 모든 것이 부족한 몸으로 봉사하라는 뜻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종 중의 기틀을 잡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 하고 취임일성으로 종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여 종회를 활성화 할 것이 라고밝혔다. 이어 종남,규해 감사는 비록 창립은 늦 은 감이 있지만 빠른 활성화를 위해 최선 의노력을아끼지않을것이라고말했다. 화석 대종회장은 좌상공 후예 중 가장 종원 수가 많은 고직당공 종중이 구성되 지 않아 항상 어느 한곳이 부족한 생각이 들었으나 이제 오늘 창립으로 대종회도 더불어 발전될 것을 확신한다며 축하하 였으며, 순옥 무은공 종회장은 고직당공 선조님은 문과에 무은공 선조님을 무과 에 급 제 하 여 두 분 이 나 란 히 조 정 에 출 사 하여 문중을 빛냈듯이 오늘 창립으로 두 문중이 더 협력하여 대종회 발전에도 이 바지하자며창립을축하했다. 고직당공의 휘는 영철(英喆) 號는 고 직당(孤直堂)으로 명종 21년(1566년)에 태어났다. 8세에 모친상을 당해 시묘(侍 墓) 3년을 마쳤으며, 광해군의 폭정으로 과거에 꿈을 접었으나 계속된 폭정으로 보다 못해 의병을 규합하여 인조반정에 참 여 후 창 평 고 을 의 향 약 을 재 정 하 고 지 역의 문풍을 일으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계모(繼母)의 간절한 소원이 아 들의 과거급제임을 알고 나이 70세(1636 년)에 과거에 응시 급제하여 계모를 기쁘 게 하고, 병조좌랑과 영춘현감을 지내고, 승정원 승지 겸 동지중추부사에 증직되 었다. 한편 고직당공 종중의 창립으로 그동 안 위토답을 비롯한 선영관리가 이재공 종중에서 이양되어 더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질것으로기대된다. 밀성박씨좌상공후고직당종중창립총회 뱛위토답을비롯한선영관리가이재공종중에서이양되어 뱛더체계적인관리가이루어질것으로기대븣8월27일합동벌초 박행순회장 국립대전현충원에마련된영결식장의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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