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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16년 7월 31일 (음 6월 28일) 일요일(신라기원 2073년) 인체파동원리 http://blog.daum.net/tongnamu79 전화:053-588-7300 제115호 12면(월간)뱚 손을 얹으면 아픈 곳이 낫는 보석체험, 추풍령 통나무연수원 븡펜션. 문의:010-8020-8075 숭덕전은 지난 17일 ‘숭덕전보존회’ 창 립총회를 갖고 날이 갈수록 외세의 부당 한 대우로 존립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 는 숭덕전을 이제 우리 스스로 수호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이르러 전·현임 참봉 전 체가 중의로 창립하게 되었다며 오는 9월 추향대제 이후 관계당국에 법인을 신청 할예정이라고밝혔다. 박동준 전참봉은 참봉 도임을 미루라 고 하지 않나 사사건건 간섭하는데 있어 도대체 숭덕전 수호에 대해 무얼 어느 정 도 알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만일 참봉도임을 미루었다면 연 년세세(年年歲世)끓어지지 않고 이어온 왕릉수호를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돌아 오는데, 숭조는 뒷전이고 오직 기득권을 갖고 군림하려는 처세를 용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숭덕보존회 설립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숭덕전은 1429년(세종11)창건 이후 조 선시대에는 국전으로서 조정으로부터 향 축과폐백이내려지고예조주관으로관찰 사가초헌관으로헌작봉행되었던숭덕전 제향과관리가1905년을사조약이후대한 제국에서의지원이줄어들면서1914년박 씨화수계를설립성손자립으로숭덕전을 수호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1929년 대대 적인 모금운동을 벌여 전국 13도 성손의 표성금 196,041원 90전으로 전우(殿宇)를 중수하고 위전(位田) 20여 두락(마지기) 을 매입,1946년 숭덕전에 총본부를 둔 박 씨대종친회 창립하여 시도에 본부를, 시 군에 지부를 읍면에 분회를 두고 광복된 정부에서 지원이 끊긴 숭덕전을 우리 스 스로수호하기시작하였다. 그러나 1952년 농지개혁령에 의해 숭 덕전의 위토답 전부가 몰수되면서 당시 숭덕전 전참봉 봉래(鳳來), 종친회장 화 준(華準), 평의원 병조(炳朝) 현종 등이 나서 투쟁끝에다시 되찾아,1959년 종친 회 산하에 사단법인 신라오릉보존회를 설립하여대외협상력을높였다. 그러나 박씨종친회장과 오릉보존회 이 사장이 서로 대립하면서 분란이 계속되 어 1970년대 말 대제 이후 상현재에서 모 여 겸직하기로 결정하여 지금에 이르렀 으나 그동안 분리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박씨대종친회산하 오릉보존회 외 ‘숭덕 전 선양회’, ‘참봉협의회’ 등 사단법인체 가출범활동에들어갔 다. 한편 이날 창립총회는 도문(道文, 90) 前 유리왕릉 참봉을 비롯 얼마전 뇌출혈 로 병 마 와 힘 든 싸 움 을 하 고 있 는 영 채 (英埰,82)前시조왕릉 참봉이 멀리 여수 에서 찾아와 힘을 보탠 가운데 국민의례, 창립취지문채택, 정관제정, 임원선출, 기 타 토의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전·현임 참봉50여명이참석성황을이루었다. 이날 선임된 임원진은 이사장 박동준, 이사 무광, 병준, 인석, 진국, 장길, 돌희, 병승, 영채, 영택, 철규, 남현 참봉, 감사 용부,흥식前참봉을각각선출하였으며, 기타토의시간에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권리만 행사함으 로서 우리 종친회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 었다고 지적하고, 박씨종친회가 창립할 때 숭덕전에 본부를 두었던 만큼 숭덕전 을 중심으로 화합단결하여 전국의 성손 들이 숭덕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 도록노력할것을다짐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숭덕전 보 존회 창립총회 성료 외세의간섭에서벗어나국전으로서위상회복과자립운영위해불가피 9월추향대제이후법인신청 숭덕전보존회는이날 창립총회에서이사장을비롯한 이사진을선임했다.(사진왼쪽부터무광, 병준, 인석,진국장길이사,동준이사장,돌희,병승,영채,영택,철규,남현이사) 박용부 감사 박흥식감사 조선시대에 최초로 발간된 조기교육 교재는 무엇이 었을까? 아래로는 마을 서당의 6, 7세 이상 아동들로부터 위 로는 왕실의 왕세자까지 널리 누구나 앞 다투어 익혔 던교재가바로븮동몽선습븯(童蒙先習)이다. 문장, 도덕, 역사를 모두 아우르는 종합교재이며 국 정교과서인것이다. 븮동몽선습븯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아동교육서이며 아동교육을 목적으로 저술된 이 책은 여러 가지 측면 에서가치를지니고있다. 조선조 아동교육서는 천자문에서 시작하여 동몽선 습, 소 학, 통감절요(또는 사략), 사서오경 순으로 배 워왔다. 븮동몽선습븯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으로는 효(孝) 를 가장 강조한 정신과 오륜(五倫)의 쌍무 윤리질서 를 강조한 점, 그리고 논리체계가 정연함, 또한 잘 맞 춰진 운율과 좋은 문장 표현방식은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븮동몽선습븯이 가진 고전적 가치를 오늘날 어린 이 인성계발의경학과 역사학을 함께 강조한 논리로써 특별히 유념하여 할 특성을 살려 개선한다면 계승할 가치가충분히있다고본다. 이의 계승을 위한 학술대회를 지난 9일 국회의원회 관 제1소회의실에서 충북대학교 우암연구소가 주최하 고 함양박씨 구당공 소요당공 명헌공 종중이 후원하는 학술대회가개최되어눈길을끌었다. 이날 학술대회는 성균관대학교 함영대 교수의 사회 로어강석우암연구소장의 인사말,박동인 함양박씨대 종회장의 환영사, 이명수 국회의원의 축사에 이어 최 봉영(한국항공대)교수의기조강연으로시작됐다 이어 신명호(부경대), 이근호(명지대), 신창호(고 려대), 김봉좌(서울시립대), 박연호(충북대) 교수가 각각 주제발표에 나섰고, 이왕무(한국학중앙연구원), 송양섭(고려대), 윤원현(성균관대), 전재동(경북대), 하윤섭(충북대) 교수가 각각 주제의 논평과 토론자로 나섰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익철 박사가 좌장으로 종합토론을이끌며마무리되었다. 븮童蒙先習븯은 박세무(朴世茂, 1487-1564)가 중종36 년(1541)에 저술하여 3년 뒤인 중종 39년(1544)에 이 르러간행되었다. 븮동몽선습븯은 원래 박세무가 집에서 자녀들을 가르 치기 위해 지은 것인데,제자 문인 등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여 왕세자는 물론 시골 글방에 이르기까지 초학 자(初學者)가이책을읽지않은사람이없었다. 그리하여 조선 현종 11년(1670)에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1607-1689)이 븮동몽선습븯의 발문(跋文)을 쓸 정도로 조선시대 사림에게서 몽학(蒙學)에 유용한 교 재로인정받게되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성리학적 윤리도덕을 중시하는 입장에서,조정에서는이상적인왕도정치를구현하고, 향촌에서는 오륜의 풍속을 바로 잡고자 주자가례, 소 학,동몽선습등을보급했던것이다. 궁실에서는 박세무의 제자인 노수신(1515-1590)이 세자들을 가르치는 서연(書筵)에 참여하던 1580년 무 렵부터처음소개하여사용했다. 우암 송시열이 세자교육을 담당했던 1670년 무렵을 거쳐, 영조 18년(1742)에 영조가 직접 쓴 서문을 붙인 븮동몽선습븯이 간행되면서 당당하게 국정교과서로 자 리하게되었다. 고종 17년(1880)에도 세자에게 가르칠 교재 목 록 가 운데븮동몽선습븯을포함시켰다. 일찍이 심수경(1516-1599)은 븮동몽선습븯이 오륜의 내용을 기술하고 역대의 사실(史實)을 기술하여 경사 지략(經史之略)을 아우르고 있어 아동들이 마땅히 익 혀야할책이라고언급한적이있다. 븮동몽선습븯의 내용은 1742년에 영조가 쓴 서문과 167 0년에 송시열이 쓴 발문을 제외하면 서론에 해당하는 내용을 시작으로 부자유친븡군신유의븡부부유별븡장유 유서븡붕우유신의오륜의내용을서술하고있다. 뒤이어 총론에서는 먼저 모든 행실의 근본인 효순 (孝順)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중국 상고시대의 삼황 오제부터 명나라까지의 역대사실을 기술했으며, 마지 막으로 우리나라 단군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간 략하게기술하였다. 몽학의 교재로서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한 영조는 븮동몽선습븯 언해본도 간행하도록 명하여 널리 보급시 켰는데, 그 결과 개화기를 거쳐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 까지 동몽의 교학을 위한 필수적인 교재로서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당교육에서 븮동몽선 습븯이 사용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민족정신사에 있어서매우중요한의미를지니는것이다. 븮동몽선습븯은 발행된 시기에 따라서 마치 일제 강점 기의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반영이나 한 듯이, 다소 변 형된 아류의 이본들, 특히 조선총독부에 발행허가를 얻기 위해 부득이 중국이나 우리나라 역사를 기술한 역대 사실을 약간 축약한 유형과, 역대 사실의 내용을 생략하고 별도의 내용을 첨부한 유형이 있었으며, 다 른 경전의 내용을 가지고 새롭게 편집한 이종의 몽학 교재나, 븮동몽선습븯의 책명을 달리 붙인 유형도 있었 다. ▶관련글12면 한편 이날 대회에서 박동인 함양박씨대종회장은 환 영사에서 뷺오늘 학술대회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꼭 유념하여 지켜야 할 오륜의 각 항을 되새겨 보는 자 리뷻라고 말하고 뷺동몽선습은 아동 교습서를 시작으로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읽히게 되었다 는 국민교과서의 효시뷻라고 말했다.이어 긴 시간 자리 를끝까지지켜주실것을당부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il.net) 뱛뱞우리나라최초의아동교양교과서븮동몽선습 븯 뱛븮역사적배경븡학술적가치븯계승학술대회개 최 동몽선습- ‘天地之間萬物之衆에 惟人이 最貴하니 所貴乎人者 는 以其有五倫也 라 천지사이에 있는 만물의 무리 중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이 귀한 까닭은 다섯가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며오륜을강조한다. 븮동몽선습븯원저자박세무(朴世茂)선생탄생530주년기념 뱞충북대우암연구소주최국회제1소회의실서학술대회열려 흥려백 장무공 휘 윤웅(興麗伯 諡 莊武 公 諱 允雄)을 시조로 하고 있는 울산박 씨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대전뿌리공원에 세워졌다. 지난 달 29일 주익 대종회장을 비롯한 150여명의 종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 식을 가진 조형물의 전체적인 형상은 한 글 ‘울산’ 글자를 조형적으로 해석하여 울산박씨의 이미지를 담았고, 상부 꼭대 기 ‘공’모양은 울자의 ‘○’부분을 모색했 고, 또 울산지역의 대표적인 고래의 형상 과 문중의 대표상징 ‘학’을 메시지로 담 았 다 . 그 리 고 기 둥 부 분 은 울 자 의 ‘ㄹ ’부 분을 그렸고, 하부에는 산과 파도로 미역 바위(곽암)의형상을조형하였다. 이번에 세워진 울산박씨 조형물은 3차 로 조성되어 86문중의 조형물이 설치된 곳으로 No185번에 세워졌다. 주익 대종회장은 제막식에 이어 인사 말을 통해 조형물 설치는 우리 문중의 뿌 리를 찾아 조상을 알리고 또 조상을 알고 자신을 성찰하여 조상의 얼을 되살리고 찬란한 문중의 역사와 전통을 선양하고 자 하는데 목적이 있고 이를 계기로 우리 울산박씨의 뿌리를 더욱 다져나가려 한 다고 말하고 이번 사업에 동참해준 일가 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감 사의인사를전했다. 이번 조형물 설치까지는 많은 분들의 헌성으로 이루어졌다.2014년 4월 정기총 회에서 발의되어 수차례에 걸쳐 회의를 갖고 조형물 조감도와 작가(박건규)를 선정하고, 12개 지파에서 5천3백여만원, 주익 대종회과 기대 현종(대흥파)각 5백 만원,30여명의 성손들이 많게는 2백만원 부터 1백만원까지 4천3만원 등 합계 9천6 백5십만원의 헌성금이 답지해, 설치비용 으로5천8백여만원을지출하였다. 울산박씨의 본관을 울산(蔚山)으로 사 용한 것은 조선 숙종 을유년(1705년)에 가선대부 동암공(東巖公, 휘 두세)이 울 산부사로 부임하여 초간(初刊) 보(譜)를 수찬하여 책 표제에 ‘울산박씨족보(蔚山 朴氏族譜)’라고 기록한데서 정립되어 오 늘날사용하고있다. 울산박씨 시조 장무공(휘 윤웅)은 신 라시조왕의 후예로 신라 효공왕 5년 901 년 신유(辛酉)에 계변성)현 울산 중구 박 구동 구교마을) 아래에 웅거(雄據)하여 신학성장군(神鶴城將軍)이라 칭하여 이 지역을 통치하는 호족장으로 세력을 확 장하고 소국왕자격(小國王者格)으로 번 창하였다. 고려 개국시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에 올랐고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워 벽상 공신이 되어 숭록대부 대장군의 관직을 하사 받고 통치하던 동진, 하곡, 동안, 우 풍, 임관 등 5개 군현을 통합하여 흥려부 (興麗府)로 승격(현재 울산시는 이날 10 월 1 일 을 울 산 시민의날로 제 정함)시켜 공 (公)을 삼한공 신 흥 려 백 ( 三 韓 功 臣 興 麗 伯)에 봉작(封 爵)하여 숭록 대부 대장군에 배명되고 통합 삼 한 벽 상 공 신 에 녹훈되어 통치하던 흥려부 전지역을 사패지로하사받았다. 아직도 그당시 사패지 일부인 미역바 위(곽암) 12구(區) 중 1구(區)가 지금까 지 보존되어 있는 것은 천여년의 역사를 가히짐작할수있다. 이 미역바위는 일면 양반(兩班)바위 윤 웅(允雄)바위로 부르고 있으며, 지난 200 1년12월20일울산광역시지방문화재(기 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울산박씨 종중 에서 관리하며 여기서 생산되는 미역을 매년 3월 중정(中丁)일 공(公)의 향사시 제수(祭需)로진공(進貢)하고있다. 그 리 고 고 려 문 종 이 래 공 의 신 주 를 성 황당에 모셔 계변천신(戒邊天神)으로 숭 앙(崇仰)하여수호신으로받들고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울산박씨대종회성씨조형물제막 대전 뿌리공원븣효븡뿌리를 주제 한 각 성씨별 조형물 설치, 매년 효문화축제 열어 효 사상 고취 제막에참여한 임원진이 기념촬영을하고있다. 곽암 사적비와 곽암(울산 북구 강동동 판지마을 해수면아래) 주익대종회장이 고유제에서 초헌관으로 헌작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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