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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6월30일 목요일 6 (제114호) 특집 大同譜編纂委員會및編輯委員 △위원장박래식(010-7169-9140) △상근부위원장박상범(016-481-6552,국당공파) △부위원장 문림랑공파박진식(010-2290-1889,대구시)/난계공파박진하(010-4907-6936,옥천읍) 이요당공파박희삼(010-5402-1538,대전) △ 편 집위 원 ○문림랑공파박영식(010-4204-6565,제주시)/박남근(010-2079-6972,광주광역시) /박영동(010-2838-8384,대구)/박태암(010-3121-0635,달성군)/박태인(010-9310-4842, 진 주 시 ) ○난계공파박원하(적명 임용010-3203-3172,인천)/박팔만(010-4562-1488,여수) /박희태(010-5484-9849,옥천읍)/박종철(010-5546-3333,구미)/박희문(010-2877-0757,대구) ○국당공파박희원(010-4122-0127,영동읍)/박근용(010-5568-1564,영동읍)/박세열(016-468-3735,황간면) /박재용(010-4841-0412,영동읍)/박희조(010-7756-8199,거창읍)/박종운(011-526-5648,대구) ○이요당공파박희복(010-3412-6903,심천면)/박의부(010-2869-2173,대전) /박희선(010-2423-5644,김천)/박상용(010-4456-8055,대전)/박세종(010-8108-2304,대구) 密陽朴氏僕射公派大同譜編纂委員會 밀양박씨복야공파(僕射公派 ) 대동보 편찬 안내 밀양박씨 복야공파 대종친회에서 대동보를 발간하기로 결정하였기에 공고하오 니 단기간내에수단이정비되어우수하고귀중한족보가편찬되어가보(家寶)로보 존 될수있도록협조를부탁드립니다. 특히 족보상식에 밝은 어른들이 작고하면서 이번대동보가 마지막 족보가 될 우려 가있어종원여러분들의적극적인참여로누락되는종친이없도록하여주시기 바 랍니다. ◇발행기간:2015년 12월~2017년 6월30일까지 ◇발행기준:1990년(庚午譜),1979년(己未譜) ◇수단기간:2015년 12월부터 2016년12월31일까지 ◇수단접수처:충북영동군영동읍계산로2길4.종친회사무실(영동세무서앞) ◇입금은행:농협301-0181-4871-11 ◇예금주:복야공파대종회 문의043-743-3015 FAX043-744-3015 사무국장박원용010-5487-2228 ◇인쇄처대전회상사 천성산봉우리에솟아오른 유월의아침햇살은 천마산자락에포근히안긴 이곳효충역사공원을가득비추이고 양산천굽이굽이흘러가는물은 낙동강과만나드넓은바다를향해갑니다 쉼없이흐르는시간은 일천칠백년을단숨에뛰어넘어 숨을고르듯잠시멈추고 드디어우리앞에나타난 삽량주의충신박제상공을만납니다 공이시여 저희는경건한마음으로 이렇게다소곳이손모으고 깊이머리숙여예를갖춥니다 의젓한자세를지키는머리 얼굴표정은위엄이있으며 단정하고곱게떠서지그시정면을보는눈에서는 평온한안색을느낄수있고 조용히다문입에서는고른숨소리와함께 나직하고도분명한말소리가들리는듯하며 금방이라도자리에서일어나 발걸음을옮겨우리앞으로걸어오실듯합니다 그리하여 왕명을받들어고구려와왜에볼모로잡혀있는왕의아우를구하고 자신은돌보지않고죽기를맹세하던그날의충절과 왜왕의회유에도굴하지않고 차라리신라의개나돼지가될지언정결코왜의신하가될수없다시며 곧은심지꺾지않고굳세고강하게펼친그때의절개를 다시한번우리에게생생하게되새겨주실것같습니다 삽량주의충신박제상공이시여! 공의충절과절개는 면면히이어져오늘에도빛나고있어 영원한충신의사표로삼아그뜻을본받아기리고 오늘에되살려대물림될수있도록 사명감을가지고대대손손전하겠습니다 공이시여! 인구30만을넘어 자족도시를향한우리의힘찬모습이보이십니까 행복도시를향한우리의울림이들리십니까 박제상공이시여! 부디영원히꺼지지않는 밝은등불이되소서 우리고장양산을환히밝히는 빛이되소서 삽량주의충신이시여! 양산의등불이시여! 박제상 동상 제막식 - 추모 헌시 뱛삽량주의충신이시여, 뱛양산의등불이시여븣 이 종 락 뱚작자:이 종락 뱚▲ 수필가, 시낭송가뱚▲ (사)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장뱚▲<문학저널> 제11회 수필부문 신인상 당선뱚▲2 000년 양산시 ‘햇귀맞이’ 축 시공모우수상수상 ▲양산예총공로상수상 ◆ 작자 및 낭 독자 약력 박몽열 장군은 밀양박씨 복야공 后 국 당공(휘 흥생) 5대손으로 아버지는 어모 장군행충무위부사용(禦侮將軍行忠武衛 副司勇) 휘 형(亨) 어머니 숙인단양이씨 (淑人丹陽李氏)와의 사이에 1555년(明 宗10) 을묘(乙卯)에 태어나 무과에 급제 하여 무반가의 길을 이어 수문장(守門 將)장에 이르렀으나 홀연(忽然)히 관직 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서 삼종형제 정필(廷弼) 정로(廷老) 정양(廷亮) 정길 (廷吉)등과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문하에서다시수학(修學)하였다. 때마침 중봉 조 선생이 장차 왜적이 우 리 강토에 쳐들어 올 것을 예측(豫測)하 여 영호비왜책(嶺湖備倭策)을 세워 조정 (朝廷)에 건의하였던바 이 건의가 받아 들여져 공(公)은 왜적들의 북상요로(北 上要路)인 호서(湖西)와 영남(嶺南))의 경계(境界)인 황간(黃澗)의 권지(權知, 임시직또는후보자)로배속되었다. 선조25년(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 나고 왜적들은 그해 4월 14일에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성과 동래성을 연속 함락 하고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북상하여 그 해7월에추풍령에쳐들어왔다. 장지현(張智賢) 장군이 추풍령 고개에 서 이들을 맞아 분투(奮鬪)하였으나 전 사(戰死)하고, 당시 황간현감인 정선복 (鄭善復)은 싸우지도 않고 달아나 산속 으로숨어버렸다. 이때 황간현(黃澗縣) 권지(權知) 박몽 열(朴夢說)은 현감을 대신하여 분연히 일어서서 장사(壯士)들을 소집하여 왜적 에대항하여싸웠다. 그러나 적세(敵勢)는 강성(强盛)한데 다 가 우 리 가 갖 지 못 한 조 총 (鳥 銃 )을 소 지 하 고 있 어 오 랫 동 안 버 티 지 못 하 고 황 간현은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공(公) 사 로잡히는몸이되었다. 왜적이 공(公)을 사로잡아 보니 용모 (容貌)가 비범(非凡)한지라 이는 필시 (必是) 범상(凡常)한 사람이 아닐 것이 니 죽이는데도 공손히 죽여야 한다고 하 면 서 하 늘 에 제 사 지 내 고 공 ( 公 )을 냉 수 (冷水)에 목욕시켜 손톱 발톱과 머리카 락을 깎아 놓고 큰 가마솥에 넣어서 삶아 죽이려하였다. 그 런 데 이 때 하 늘 도 무 심 (無 心 ) 치 않 아 갑자기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일고 폭우(暴雨)가 쏟아져 탁류(濁流)가 천지 를 뒤덮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적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공(公)은 재빨리 포승 을 풀고 물속에 뛰어들어 헤엄쳐서 위급 을 모면하고, 그때 왜적(倭敵)은 그가 꼭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시체를 건지려 했 으나 찾지 못했다. 그는 풀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50리 길을 걸어서 영동 본가 에이르렀다. 이때 영동에는 한명윤(韓明胤) 공(公) 이 현감으로 있었는데 그는 이 사실을 듣 고 충청도 관찰사를 통해 선조임금 행재 소에 상소하여 공(公)은 정식으로 황간 현감에임명되는성은(聖恩)을입었다. 공(公)은 황간 현감으로서 영동현감 한명윤과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고 서로 협력하여 도와가며 일종(一種)의 유격전 을 전 개 하 여 적 의 후 방 을 교 란 하 고 각 처 에서 전첩(戰捷)을 올렸다. 특히 개령과 상주에서는 선전(善戰) 분투(奮鬪)하여 혁혁한 전과(戰果)를 이루었으나 이때는 이미 도성(都城)이 함락되고 왜적은 북 상하여평양까지점령하고있던때였다. 그 후 명군(明軍)이 구원병으로 조선 에 나오고 남해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혁 혁한 전첩(戰捷)을 올려 왜군은 우리 강 토(疆土)에서 물러갔으나, 정유(丁酉,15 97)년에 또다시 쳐들어 왔다. 소위 정유 재란(丁酉再亂)이었다. 이때 진주성은 두 번째로 함락되는 운 명(運命)에 놓였으니 김신민(金信敏) 장 군이 싸우다가 전사(戰死)하고 의기(義 妓) 논개(論介)가 촉석루 밑 의암(義巖) 에서 적장(敵將)을 껴안고 투신(投身) 순절(殉節)한이야기는유명하다. 공(公)은 이 진주성 수호 전투에서 용 감하게 싸웠으나 화살이 떨어지고 힘이 다해 마침내 전사(戰死)함으로서 나라를 위해순절하였다. 이날 진주성 전투에서 중과부적이었으 나 온몸을 바쳐 순절한 장군의 희생은 의 병장 고경명과 창의사 양대박 장군과 더 불어늠름한충열로평가받고있다. 부인 문화유씨는 이보다 앞서 공(公) 이 황간전투에서 사로잡혔다는 기별을 듣고 8세된 영백(英伯) 5세 남백(南伯) 두 아들을 친정 동생에게 맡기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결을 함으로서 남편(男便)을 따라 순사(殉死)하여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중산리 국도변에 정려 충열각(忠 烈閣)을세워기리고있다. /박세열명예기자(충북영동군지부) 뱚5면에서 이어짐 박몽열장군영정. 좌승희 기념재단 이사장이 주제발표를하고있다. 븮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븯은 현재 대한 민국이 직면한 문제를 박정희 식으로 풀 어갈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자 지난 1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븮위기의 대한민국,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븯를 주제로 한 학술 심포지엄을열었다. 심포지엄 1부에서는 븮박정희 산업혁명: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븯을 주제로 좌승희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 이사장, 김준경 KDI 원장, 조장옥 한국경제학회 회장의 발표가있었다. 내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 을 앞두고 ‘박정희 리더십’의 공과(功過) 를 학문적으로 연구해 경제 양극화 등 위 기에 빠진 대한민국의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는의견이제기됐다.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사장 은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위기의 대한민국,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 심포지엄에서 “박 전 대통령의 경 제정책은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신상필 벌(信賞必罰)의 차별적 지원을 적용해 역동적인 동반성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했다”고평가했다. 이어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의 경제 정책은 노력 없는 주체를 배려해 실패를 스스로 책임지기보다는 사회 책임으로 돌리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며 “무차별적 인 동 반 성 장 추 구 는 오 히 려 저 성 장 과 양 극화를조장할뿐”이라고지적했다. 국익을 최우선 가치에 올려놓고 정책 을 추진했던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 을 채택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 다. 김 용 삼 미 래 한 국 편 집 장 은 “격 렬 한 반 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포항제 철 건설 등을 밀어붙여 성공한 결단력과 혁명가적 발상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 장했다.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는 박 전 대 통령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국제적 격변의 시대에 누가 우리의 적인지 아닌 지 정확히 알고 활용했다”며 “이 같은 조 타술을배울필요가있다”고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송 복 연세대 명예교 수의 기조연설에 이어 1,2,3부로 나누어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나누어 진행되었 다. 1부에서 좌승희 이사장이 박정희 산업 혁명; 세계최고의 동반성장이라는 주제 발표를 하고 토론에는 김준경 KID원장, 조장옥 한국경제학회회장이 참여했고 사회는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았 다. 2부에서 집권18년의 박정희 혁명가인 가 정치가인가 라는 주제발표는 김용삼 미래한국편집장, 토론에는 이주천 원광 대 교수의 사회로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이철순부산대교수가참여했다. 마지막 3부는 김세중 연세대 명예교수 의 사회로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가 박정희의 부국강병책;우리나라는 우리힘 으로 지킨다.라는 주제발표를 했고 토론 에는 조원일 전 베트남대사와 성한용 한 겨레신문선임기자가참여했다. /자료제공박정하고령박씨대종회사무총장 위기의대한민국박정희에게길을묻 다 박정희대통령탄생100주년앞두고제1차학술심포지엄-한국프레스센터20층국 제회의장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