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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6월30일 목요일 10 (제114호) 종합 천안시가 조성한 어사 박문수 테마길 및 유관 순열사 사적지가 공무원 교육기관의 현장학습 코스로활용되면서새롭게조명받고있다. 시에 따르면 2016.3.23일 국가공무원 인재개 발원 교육생 200명이 천안시를 방문, 천안예술 의전당을 출발해 어사박문수 테마길,유관순 열 사 사적지, 아우내장터를 둘러보는 견학을 했 다. 이번에 방문한 교육생들은 5급 승진자과정 의 검찰청, 법무부, 환경부 등 국가직 공무원들 로 공직윤리의 재강조가 필요한 시기에 위민행 정의 공직자 표상이 되는 어사 박문수 테마길을 현장학습코스로택했다. 교육생들은 예술의 전당에서 박문수 동영상 을 시청한 후 어사 박문수 테마길에서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박문수의 위민의 삶을 통해 청렴 과위민을다시생각하는시간을가졌으며,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서 유관순열사 영정에 참배하고 기념관을 둘러보는 한편, 독립만세운 동의현장아우내장터를찾았다. 천안시는 그동안 어사 박문수 테마길을 조성 하여 고령박씨 종중재실에서 박문수 묘에 이르 는 구간 곳곳에 어사 박문수와 관련된 일화를 담은 스토리텔링판을 설치하고 대형버스 주차 장 및 화장실을 조성해 교육생 맞을 준비를 마 치고교육 생유치에힘써첫결실을보게됐다. 구본영 시장은 환영사에서 “위민행정을 몸소 보여준 어사 박문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으로 기억해 주시고 어사 박문수 테마길이 있는 천안에 대한 많은 홍보를 당부드린다”고 말했 다. 한편,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교육생 유치 홍보에 최선을 다해 보다 많은 공직자들이 어사 박문수의 위민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한다 는계획이다. /자료제공박정하고령박씨대종회사무총장 (http://cafe.naver.com/goyangdegoon) 박문수테마길천안시민들로부터애호 받아 천안 동남구북면은지리생가및은석산박어사묘소등 박문수선생생가(재실)앞표지판,테마길시작지점이다. 박문수선생영정 ‘장애는 살아가는데 조금 불 편 할 뿐 건 강 한 마 음 을 채 우 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비록 장 애의 신체를 주신 조상님이라 할지라도 그 조상이 아님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 이다.’ 유년기 좌족장애(소아마 비)에 걸리어 평생을 무한한 고 초를 격어 오다 6.25 전쟁으로 인해 학교 공부마저 포 기해야했던박병일현종(사진)의지론이다. 그런 그가 종중에 큰 족적을 남겨 지난 해 5월 밀양 박씨 사문진사공 후 병조판서공파 종친회에서는 그가 누대에 걸쳐 살아온 집 앞에 공덕비를 세우고 길이길 이보전케하였다. 박병일현종은 당초 너무나도과분한 상으로받을수 없다며 고사하다 종원들의 간곡한 청원으로 이를 받아 드렸다며 당시를회상한다.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종 친회에기여할수있도록자리를만들어주어야하고종 친회에서는 그 기여도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의 젊은이 들이대를이을수있도록해야한다고 당부한다. 그리고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 종친회가 활성화되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 가슴 뿌듯하다며, 종친회는 봉사하는 단체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 고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옛날 복사기가 없어 밤을 세워가며 족보 정서를 할 때는 고달픔도 몰 랐다며환한미소를짓는다. 병일 현종은 1938년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태어났 다. 선대는 강원도 횡성에서 누대에 걸쳐 큰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나 군청에 근무하다 행정서사를 운영한 할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교육 때문에 서울로 이사하였기 에 서울 생(生)이다. 대동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 금의 한국전력 전신인 경성전기주시식회사 사원으로 근무하는 아버지(휘 찬식)와 어머니 이종길 여사와의 사이의 맏아들로 사문진사공 후(后) 절충장군 휘 시현 의15세종손으로온종중의축복속에태어난것이다. 그 러 나 5 세 가 되 던 어 느 날 봄 에 갑 자 기 심 한 열 이 나고 하룻밤을 자고 나니 왼쪽 다리가 마비가 되어 일 어서지도 못하였다. 서울대 병원에 가서 진찰하니 소 아마비 같다고만 할 뿐 확실한 병명을 일러주지도 않 은 채 치료를 계속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이에 한방 치료를 병행하면 빨리 낳지 않느냐는 주위 분들의 말 에 침과 뜸 치료를 병행하였으나 큰 차도는 없어 결국 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야하는 고통을 어린나이에 체 득하기시작하였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인들은 조 선의 많은 젊은이들을 공출하여 징용으로 내보내고 있어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횡성으로 몸을 숨겨 병일 현종은 불편한 몸으로 처음 전기도 없고 자 동차도없는시골생활을시작하기에이른다. 그리고 남들은 학교에 가는데 장애인은 놀림의 대상 으로 체격이 조금 크면 편입할 예정으로 집에서 할아버 지에게 한자공부와 구구단을 배우고 어머니에게는 한 글을 배워 성남초등학교 4학년에 편입하여 꽤 공부를 잘하는소위천재소릴들었으며,6학년졸업때는5살이 나 연상인 학생에게 수석을 뺏기고 차석으로 졸업하는 귀염을 토했다. 그러나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6.25 전쟁 으로갖은고초를겪어야했다.전쟁이막바지에이르렀 을 때 학교는 개학을 하였으나 세월도 뒤숭숭하고 아이 들한테 놀림도 많이 받으며 학교생활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싶어 자퇴하고 한학자인 할아버지에게 동몽선습 부터명심보감,맹자등을수학하며농사일을도왔다. 23세에 이르러 인생설계를 다시 다듬어 본 결론은 장애인이니까 일반 농사를 지어서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걸로 결론짓고 특수농업을 하고자 3천 평 밭에다 사과나무를 심고 정미소를 개업하는 등 선진기법을 활용하며 논농사 6천 평,밭농사 7천 평의 부농으로성 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과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정미소 부산물인 보리겨, 밀기울, 쌀겨를 이용한 양계업에도 투자하는 등 정말 바쁜 생 활로젊은청춘을모두다받쳤다고해야할판이다. 36세 때에 국민소득 200불도 안될 무렵 농민소득으 로 1천불을 올려 선진농가 로선정되기도하였다. 병일 현종은 그동안 남 몰래 많은 눈물을 흘렸기 에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 과 독거노인에게 많은 관 심을가졌다. 1977년 광역협동권사업 의 일 환 으 로 마 을 의 숙 원 사업인 앞강 다리(성남교) 공 사 에 1 년 간 관 리 책 으 로 봉사하여 준공함으로서 인 근 7개리 마을 주민의 교통 편을 해소하였다. 그리고 본인 또한 장애를 갖고 있 으면서도 2001년부터 현재 까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도시락배달을자청하여봉사를하고있다. 박병일 현종은 이에 대해 옛날 성현의 말씀 중에 적 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는 말 이 있다.즉 착한 것을 쌓는 가정에는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모든 사회에 평화가 곧 오리라는 믿음을 갖고즐거운마음으로봉사에땀을흘린다. 일주일에 두 번 그것도 제일 오지로 배달하는 일이 다. 그리고 자원봉사자가 빠지는 날이면 대신 하다 보 니 한 달에 10여일은 훌쩍 넘어 1년이면 120여일 이상 배달을나간다. 이렇게 시작한 자원봉사는 2005년 경기도 이천소재 승가원 자비복지타운 건립에 사재 5천 만원을 기부했 다. 먼저 간 아내의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병일 현종 은 2000년 아내를 먼저 보냈다.그리고 그 와중에 부의 금중 장례를 치르고 남은 1천1백만원 중 3백만 원은 4 9제 제향비로 지출하고 나머지는 관내 독거노인 40명. 소년소녀가장 40명에게 10만원 상당의 전자레인지 한 대씩을구입나누어주기도하였다. 그리고 도시락을 배달해주면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 고있는독거노인들의생활을알게된병일현종은이들 에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소망이었으나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해오다 2008년 횡성군에 부 지를 마련해주면 자비로 건물을 지어 기부 체납하겠다 는뜻을전달하였다.그러나군에서부지가없다며딴청 만부리다이웃홍천에이같은사실을전달하고기부하 려하니 그때서야 부지가 마련되었다하여 늦었지만 계 획한대로 사재 1억1천여 만원을 드려 5세대가 생활을 할 수 있는 ‘햇살이머무는집’인 43평의 건물을 신축 추 위가오기전인12월13일입주시켜주위를감동시켰다. 병일 현종은 종친회 운영도 남다르다. 한 집안의 15대 종손으로 책임감도 있었지만 우선 나를 이 세상에 보내준 선조님에대한추원보본의정신에서우러나왔다한다. 20세 이전부터 종중일을 보았고, 각 문중에서 족보 를 할 때 수 단 비 와 책 값 을 별 도 로 받 고 있 지 만 1 9 세 (歲)에 처음 족보 할 때 서기, 42세(歲)에는 총무, 60 세(歲)에는 발행인, 77세(歲)인 지난 2015년에는 고 령임에도 불구하고 총책을 맡아 훌륭한 족보를 수단 비없이무료로배급하여훌륭한유산으로남겼다. 특히 족보발행 후 남은 잉여금은 종친회 창립의 주 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1984년 창립발기인으로 총무 를 보았고,1991년 부회장 6년,1997년부터 종친회 제5 ~6대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은 매년 고교생 4~5명의 학 생에게 장학금을 최초로 지급하며 종친회 기틀을 공 고히 다져 2016년 현재 32차 정기총회와 장학금 전달 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수혜자들은 반듯하게 성장하여 종중의 학생들에게 지급해 달라며 장학기금 을 후원하고 있어 횡성지역은 물론 타지방 타 성씨들 에게도좋은본보기가되고있다. 병일 현종의 이 같은 선행은 횡성군수 감사패 및 표 창패, 횡성군민대상, 강원도지사표창 2회(1987,2006) 수상과 그 외 수많은 단체에서 수여한 공로패와 감사 패가 수두룩하다. 그리고 종친회에서 드린 다수의 공 로패에 이어 이번 공덕비 건립은 그의 인생역경을 대 신하고 있는 듯 하다. 어려운 환경에 자 녀 5 명 , 동 생 2 명 , 조 카 1 명 등 8 명 을 대 학까지 졸업시켰고, 도시락 배달로 인 연을 맺은 봉사단체의 회장과 군민대상 수상의 모임 회장을 맡아 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는 병일 현 종이 앞으로도 더 건강한 삶으로 많은 후학들에게 따뜻한 심성이전해지길 기 대해 본다. /박상섭 편집국장(parkss 1012@hanmail.net) ■ 종친탐방 븣 장애를딛고종사에큰획을그은 병조판서공파전(前)회장德松박병일현종 박병일현종의집에는언제나태극기가걸려있다.동네전주민에게태극기를사재로구입하여무상으로분배하기도 해그의국가관 을 엿볼수있다.왼쪽공덕비가보인다. 2015년 5월 종중에서 세운 공 덕비. 2007년노인의집준공식에서테이프를컷팅하고있는박병일현종(왼쪽에서5번째)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