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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5월31일 화요일 6 (제113호) 관향조 종친회 大同譜編纂委員會및編輯委員 △위원장박래식(010-7169-9140) △상근부위원장박상범(016-481-6552,국당공파) △부위원장 문림랑공파박진식(010-2290-1889,대구시)/난계공파박진하(010-4907-6936,옥천읍) 이요당공파박희삼(010-5402-1538,대전) △ 편 집위 원 ○문림랑공파박영식(010-4204-6565,제주시)/박남근(010-2079-6972,광주광역시)/ 박영동(010-2838-8384,대구)/박태암(010-3121-0635,달성군)/박태인(010-9310-4842,진주시) ○난계공파박원하(010-3203-3172,인천)/박팔만(010-4562-1488,여수)/박희태(010-5484-9849,옥천읍) /박종철(010-5546-3333,구미)/박희문(010-2877-0757,대구) ○국당공파박희원(010-4122-0127,영동읍)/박근용(010-5568-1564,영동읍)/박세열(016-468-3735,황간면) /박재용(010-4841-0412,영동읍)/박희조(010-7756-8199,거창읍)/박종운(011-526-5648,대구) ○이요당공파박희복(010-3412-6903,심천면)/박의부(010-2869-2173,대전)/ 박희선(010-2423-5644,김천)/박상용(010-4456-8055,대전)/박세종(010-8108-2304,대구) 密陽朴氏僕射公派大同譜編纂委員會 밀양박씨복야공파(僕射公派 ) 대동보 편찬 안내 밀양박씨 복야공파 대종친회에서 대동보를 발간하기로 결정하였기에 공고하오 니 단기간내에수단이정비되어우수하고귀중한족보가편찬되어가보(家寶)로보 존 될수있도록협조를부탁드립니다. 특히 족보상식에 밝은 어른들이 작고하면서 이번대동보가 마지막 족보가 될 우려 가있어종원여러분들의적극적인참여로누락되는종친이없도록하여주시기 바 랍니다. ◇발행기간:2015년 12월~2017년 6월30일까지 ◇발행기준:1990년(庚午譜),1979년(己未譜) ◇수단기간:2015년 12월부터 2016년12월31일까지 ◇수단접수처:충북영동군영동읍계산로2길4.종친회사무실(영동세무서앞) ◇입금은행:농협301-0181-4871-11 ◇예금주:복야공파대종회 문의043-743-3015 FAX043-744-3015 사무국장박원용011-487-2228 ◇인쇄처대전회상사 무은공 박세중 선생 부조묘 제향이 지 난 달 27일(음3.21) 오전11시 부조묘가 있는 전북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 곡촌마 을 풍양사에서 화석 좌상공파대종회장의 집례로 용식, 정석, 상준 일가의 초헌, 아 헌,종헌이 각각이어지고순옥무은공종 회장의독축으로봉행되었다. 이날 제례는 선생의 훌륭한 구국정신 을 계승하기 위해 전국에 산재해 있는 후 손들과 지역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봉행 되었으며, 봉행 후에는 종중 총회가 이어 져, 남원시에서 추진중인 종중산의 산책 로 개설에 따른 동의서를 만장일치로 승 인하였다. 무은공 박세중 선생의 자(字)는 군극 (君極), 호(號)는 무은(霧隱) 또는 세칭 무웅(世稱 武雄)이다. 시조왕의 50세손 이며 밀성대군 휘 언침의 21세손으로 좌 상공(휘춘)의8세손이다. 선조 23년(乙未 1595년)에 남원부 갈 치방 황죽리에서 출생하여 광해10년(161 8년)23세에 무과에 합격하였다.용력(勇 力)이 절륜(絶倫)하고 말타기와 활솜씨 가 특출하여 무과 등재후 한양으로 가던 중 사을고지(沙乙古池)에서 용마를 얻었 다. 광해군의 폭정으로 인조개옥에 참여하 여 광해로부터 옥쇄를 받아 인조에게 전 달하고,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등 진무공 신(振武功臣) 2등, 정 사원종공신(靖社源 從功臣)1등 공신에 녹훈 되었다. 병자호란에는 의병을 일으켜 상경하 던 중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면서 偸生非是男兒事(투생 비시남아사, 억지로 살고자하는 것이 사 내가 할 일이 아니다) 愧恨不從 三學士 (괴한부종삼학사, 삼학사를 따라죽지 아 니함이 부끄럽구나)라는 유명한 시를 남 겼다. 1622년 3월 22일 서거(逝去)하여 숙종 8년(1682년)에 命 부조묘지전(不 튐廟之 典)하여 1686년 을축년에 전북 남원시 대 강면 풍산 261-3번지에 풍양사를 건립하 여 1995년 5월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가 전고문서 5종 29점이147호로 지정되고 2 000년 6월 23일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풍 양사) 제155호로 지정되었으며, 최근 중 수를 거쳐 지난 연초 단청을 마쳐 산뜻하 게면모가일신되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무은공박세중장군부조묘제향 진무공신(振武功臣)2등·정사원종공신(靖社源從功臣)1등으로 병자호란에의병 일으켜 븣선조의훌륭한구국정신기려 무은공부조묘 풍양사전경. 장대비가 쏟아진 지난 4월 27일 밀양 박씨 문도공파종친회 재청동호회(회장 옥규) 회원 40여명이 경북 경산의 율산 서원을 찾아 회원들의 뜨거운 관심과 숭 조심으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기록을 남 겼다. 이른 새벽 출발하여 10시 30분 도착한 순례단은 옥규 회장이 밀성대군을 비롯 한 4위의 선조님 영전(靈殿)에 분향하고 단체 참배 후 포항으로 이동 회원 친목을 돈독히하는행사를이었다. 율산서원을 찾은 회원들이 상현사들 들러보고위패를꼼꼼히살펴보고있다. 지난해 전남 고흥의 숭양사를 참배했 던 재청동호회는 매년 선조님의 유적을 돌아보며 숭조심 함양과 회원의 친목을 도모하고 있어 매년 참여하는 회원이 늘 고있다. 율산서원은 조상의 위업을 숭상하는 숭고한 정신과 경노효친의 바탕 위에 온 문중의 화목 단합과 후손들의 산 교육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하는 오랜 숙원을 온 문중의 합의로 경북 경산시 진량읍 시문 리에 1973년 3월 4일 정초(定礎)를 하여 역사(役事)를 시작하면서 지역 유림들의 공론(公論)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그리 하여 1977년 7월 자인향회(慈仁鄕會) 및 그 해 10월 2일에 경상북도 유림도회(儒 林道會)의 결의로 서기 1977년 10월 3일 창건되었다. 율산서원은 묘우(廟宇)로 상현사(尙 賢祠)와 혜성사(慧成祠)가 있고,그 전면 에 강당인 숭정당(崇正堂)과 정문(正門) 인경행문(景行門)이배치되어있다. 향사(享祀)는 매년 스승의 날(5월 15 일)과 개천절(10월 3일)에 유림도객과 후손들이제향을지내고있다. 문헌으로는 충간공 유고와 충양공 유 고, 요산공 유고를 합한 븮원리세고(院里 世稿)븯2권1책이있다. 이 문집에는 흥해후인(興海後人) 배동 환(裵東煥)이 지은 율산서원 봉안문(奉 安文)과 상향축문(常享祝文)이 있고, 오 천후인(烏川後人) 정화식(鄭華植)이 지 은 율산서원 상량문(上樑文)이 있으며, 완산후인(完山後人) 이호대(李好大)가 지은율산서원기(記) 가있다. /박방무명예기자(경북경산시지부) 밀양박씨문도공파종친회재청동호회율산서 원찾아 우중(雨中)에도불구하고숭조정신함양과친목다져 옥규회장이 상현사에참배하고있다. 율산서원을찾은회원들이 상현사들들러보고위 패를꼼꼼히살펴보고있다. 밀성박씨 좌상공파 대종회(회장 화석) 는 지난 달 24일 오전 11시 광주광역시 북 구 화암동 선영에 모셔진 파조 좌상공(휘 춘)을 비롯한 아드님 증(贈) 좌찬성공 (휘 인지), 손자 군수공(정손), 현감공 (휘 형손) 등 3대(代) 4위(位)의 서석단 (瑞石壇)시향을 영하(취죽헌공 后) 前 일성왕릉 참봉의 집례로 춘호(주부공 后) 前 일성왕릉 참봉의 분향과 강신 초 헌에 이어 순완(무은공 后)남원시 유도 회장, 규해(고직당공 后) 일가 순으로 아 헌과 종헌으로 이어지고, 화석 대종회장 의 독축으로 40여분에 걸쳐 엄숙 봉행되 었다. 좌상공 박춘 선생은 이재 백이정 선생 에게 강학(講學)하여 문장과 무예를 익 히어 후에 원나라에 들어가 등제(登第) 하시고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어 익제 이제현(益齊 李齊賢) 목은 이색(牧隱 李 穡)과 더불어 정주(程朱)의 학설(學說) 을 강론(講論)하고 밀직제학(密直提學) 이되었다. 1358년 나주목사 겸 전라도 존무사(存 撫使), 1360년 나주목사로 재차 나아가 재임 시 선정을 베풀고, 정지 장군의 영 특함을 발견,사위로 삼아 문무를 전수하 여 고려 충신으로 성장시켰으며, 청주수 원도,응양군상호군,밀직사사를 거쳐 13 65년(공민왕 14) 3월 우시중에 제수되었 다.뱚 선생은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크 게 공헌하고, 김용이 왕궁을 습격한 역모 를 진압하여 부시피난(扶侍避難)일등공 신, 1361년 공민왕이 복주(현 안동)로 피 난할 때 호종하여 호종공신 1등에 녹훈되 는 등 고려 공민왕조 충신으로 고려사에 전하고있다. 특히 이성계의 직속상관으로 1366년 신돈의 모함과 그의 부하들에 의해 살해 되지 않았다면 강직한 성품으로 이성계 의 경거망동을 잠재워 절친한 포은 선생 의 죽음과 조선 개국이 없었을 것으로 추 정하고있다. 이날 제향 후 화석 대종회장은 원근거 리에서 참례한 일가분들에게 감사드리 고, 추진중인 수보편찬사업에 적극 협력 하여 줄 것을 당부하였으며, 초헌관으로 헌작한 춘호 前 일성왕릉 참봉은 선조님 의 훌륭한 업적을 후세이 길이 전하는 현 창사업을강조했다. 한편 좌상공의 증손 이재공(휘 번) 종 중에서도 이날 제향이 이어졌다. 이재공 은 문과에 급제하 여 통훈대부 고산현감 겸 전주진영병마절제도위, 가선대부 호 조참판겸 오위도총부총관을 역임하였으 며, 제향에는 정규 집례관의 창홀에 따라 행순, 종남, 성호 순으로 각각 헌작하고 상섭 본보 편집국장이 축관으로 독축하 였다. /박흥식명예기자(광주광역시) 문무를겸비한박춘(朴椿)선생시향(時享)봉 행 제향후 오집사를 비롯한 외집사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사진 앞줄 왼쪽부터 성호 이재공 회장, 진규, 춘호초헌관,순완아헌관,규해종헌관,화석대종회장,정식,상옥,상철순) 홍건적토벌,부시피난1등공신,공민왕호종공신,신돈의부하들에의해피살븣 생존했다면절친한포은선생의죽음과조선개국없었을것. 제향광경(서석단은 좌상공이 신돈의 부하들에 의해시해되고유해마저광양앞바다에 수장됨으 로서단을세워제향을올리고있다.) 최 근 각 문 중마다 족보 편찬에 소홀 함이 없지 않 아 있음에 누 보된 종원들 을 발굴하여 파보를 간행 하기에는 더 욱 이 더 어 려 운 현실에 밀성박씨 돈재공 后 매헌공 종 중의파보간행은더욱돋보인다. 지난 5일 파보를 발간, 19일 출판기념 회를 조촐하게 갖고 분질(分帙)에 들어 간 매 헌 공 종 중 (회 장 一 求 ) 의 이 번 파 보 간행은 농경사회의 자자일촌에서 산업화 에 따라 도회지로 생업을 찾아 각기 흩어 져 가족구도가 변화하면서 상호 연락이 두절 되고 후손들끼리 영영 남이 되는 형 편이 되어가고 있는 이때에 족보라는 이 름조차 사라지는 단계에 후손들이 족보 를 통 해 문 중 에 자 기 위 치 를 확 인 하 고 문 중사의 계승발전과 상호 연락과 조상숭 배 및 묘소관리를 할 수 있도록 세대 간 이전하고 파보편찬 자료가 더 이상 인멸 되기 전에 파보를 편찬하자의 취지로 일 구 회장이 매헌공의 둘째 아들 국헌공(菊 軒公 휘 益華) 후손 파보 추진을 건의하 여 논 의 하 던 중 노 강 래 호 선 생 이 보 다 더 포괄적인 매헌공 후손의 파보편찬을 제 안하여이루어지게되었다. 이에 지난해 5월 23일 회장 일구(一 求), 부회장 래인(來寅), 편집 및 교정 래 호(來鎬), 총무 지현(智賢), 재무 천구 (千求)로 하는 임원진을 구성하여 수단 을 접수하여 1년여 만에 값지고 보배로운 파보가탄생하였다. 단일 권으로 제작된 파보는 2007년 간 행된 돈재공파 대동보에 누보된 종원들 을 발굴 게재하였으며, 매헌공부터 시작 된다. 생애 마지막 봉사라 여기고 열정을 불 태웠던 일구 회장은 발간사를 통해 집행 부 임원진의 노고를 치하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으나 그래도 누보된 일가님들 이 매 우 아 쉽 기 만 하 여 이 후 3 0 년 후 (後 ) 일을 걱정해본다며 다음 파보편찬 때에 는 누 보 된 일 가 모 두 가 함 께 하 길 바 라 는 소망을적었다. 래인 부회장은 파보를 통해 종원 상호 간 교 류 와 화 합 의 길 로 나 아 가 자 랑 스 러 운 문중의 뿌리를 더욱 이어가도록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길 갈망한다고 발문을 통해 전했으며, 편집 교정을 총괄한 래호 선생은 숭조정신이 지극히 쇠퇴해져 어 느 씨족(氏族)이 족보를 간행하였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거의 없는 오늘날 우리 문중에 만일 강암(江巖) 일구 회장님이 안계셨다면 이번 파보가 출간되는 행복 의 기쁨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 할 때 회장님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고 싶 고 언론계 원로인 서암(西巖) 래인 부회 장님을 비롯 임원 모두가 똑같은 마음으 로 회장님의 의사에 따라 주신 것은 우리 매헌공파의 단합된 모습을 대문중 모두 에게 보여준 것일 뿐 아니라 우리 파보는 뒷날에도 계속되어 발간되리란 희망까지 갖게 하여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였다고 발문에기록하였다. 매헌공은 밀성박씨 12중조의 한분인 도평의사공의 후손으로 단종절신 돈재공 (휘 연생)의 9世이고 천문지리에 밝아 임 진왜란을 예언했던 백우당 박상의 선생 의 손자로 1641년 11월 12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매실마을에서태어났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 봉양에 소홀 함이 없었고, 아버님이 돌아가심에 시묘 하고, 어머님이 돌아가심에 예법과 슬픔 이 지극하였으되 상복 입은 기간이 부족 하다하여 한 발자국도 시묘(侍墓) 밖에 나오지 아니하면서 6년 동안 초상 때와 같이 하였으며, 아버지 없는 어린 조카들 과 어머니 잃은 생질들을 모두 보살펴 혼 인 못 한 일 이 없 게 하 였 고 , 가 난 한 친 구 가 별세하면 장지를 마련해주고, 오고갈 때 없는 사람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는 등 배 려와나눔의실천을평생이어갔다. 특히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깊은 연구력을 다하여 평생 몸가짐이 충효에 힘을써매헌처사로통하였다. 한편 이번 파보 발간에 있어 나주시청 에 근무하는 공직자로 모처럼 맞은 휴일 마저 파보편찬업무에 매진한 지현 총무 는 나 이 드 신 어 른 들 이 계 시 지 않 으 면 엄 두도 못내는 일을 무사히 마치고 또한 파 보편찬의 경험까지 갖게 되어 간행기간 1 년은 더욱 뜻 깊은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 라며 어른들이 갖고 있는 모든 종사 경험 이 후 세 에 세 습 될 수 있 는 기 회 를 더 많 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해 최근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젊은 세대가 족보를 모르는 혼돈에빠져드는세태를언급하였다. 밀성박씨돈재공后매헌공파보간행 2007년대동보발간때 누 보된 종 원 찾 아 수 록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