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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5월31일 화요일 2 (제113호) 종합 사랑하는 박근혜 대통령님 귀 하 경주에 사는 늙은이 박동욱입 니다. 오래전 아버님 박정희 대 통령각하의 지시를 받아 박재원 (현 오릉보존회 고문) 회장과 함께 신라시조대왕님의 능침인 오릉을 정화하여 성역화 시켰으 며, 그 후 숭덕전 참봉으로 재임 시에는 우리 박씨 성손의 300년 숙원사업이던 ‘一字祭 閣’을 오릉앞에 건립하는 등 박재원 회장과 본은 평생을 박씨대종친회를위하여여생을바쳐왔습니다. 이제 드릴말씀은 본인이 숭덕전 참봉으로 재임할 당 시 2002년부터 나정(사적245호)복원을 계획하고 추진 위원장을 맡아 지난 13년간 신라시조대왕님이 탄강하시 고 신라건국의 모태가 되었던 나정(蘿井) 복원사업을 위하여노력하고있는중입니다. 지난 2002년 5월 21일~2005년 11월 12일까지 시작된 나정 발굴 결과 신라 신궁(神宮)으로 추정되는 팔각 건 물터와 많은 유구가 확인되어 신라건국신화가 역사적 사실로받아들여지는중요한유적임이입증되었습니다. 이에 국비 약 30여억원을 지원받아 4차례의 발굴과 4 차례의 학술대회를 거쳐 2009년 6월 24일자로 나정복원 의 기본계획을 수립하였으며, 본래의 나정부지보다 4배 의 토지를 보상 확보하고 문화재지역으로 확정고시 하 였으므로 주무관청인 경주시에서 국비 및 지방비 포함 7 1억원을 들여 2012년까지 완공할 것으로 대하고 기다려 왔으나 2016년 현재까지 지지부진 나정복원사업이 중단 된 채 문화재청과 경주시청이 서로 미루고 있어 답답한 마음에결례를무릅쓰고필을들었습니다. 내 나이 87세라 죽기 전에 ‘나정복원’사업이 착수되는 것이라도 보아야 할 터인데 어느 세월에 착수될 것인지 참으로안타까운마음입니다. 그렇지 아니해도 국정에 바쁜 대통령께 늙은이가 이 런 청원을 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나 역사적으로나 국 가적으로나 중요한 일인 만큼 신라왕손 만파일원이라 박씨 성손의 한 사람으로 드리는 청원이오니 빠른 시일 내에 사업이 착수 될 수 있도록 간곡한 마음으로 청원합 니다. 이 나라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기시는 대통령님이 되 시길기원하오며항상건강하시기발랍니다. 2016.5. 나정복원추진위원장박동욱 010-9217-2927 나정복원사업을위한청원서 지난 8일 임기 2년을 마치고 퇴임 한 박영택 유리왕릉 참봉이 ‘新羅始 祖大王 祭禮와 文化’제목의 책을 남 겼다. 이 책을 정리하면서 서두에 뷺누구 나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답니다. 그러 나 우리 모두는 자기의 길을 찾아가 는 여정에 어딘가에 잠시 들렸다. 가 는 나그네이다. 그리고 삶의 여정에 자신만의 길을 창조해야 승리의 길 을 갈 수 있다. 우리 모두 소중한 길 을 찾아 함께 손잡고 걸어갑시다. 이 것이 또한 인연의 길이기에... 여기 종친 일가님과의 만남 2년이 너무나 소중하여 흔적을 남겨봅니다.뷻라고 전하는 박 참봉은 후임참봉과 성손 들에게 유익한 자료가 되었으면 한 다고덧붙인다. 57쪽 분량의 자료집은 숭덕전의 제례와 금관조복의 설명, 정제순서, 제관의 역할,진설도 등 숭덕전 제례 에 대한 소개와 악무, 제기, 홀기 등 을 수록하고 부록으로 유교의 기원 을실고있다. 박영택유리왕릉참봉 재임기간채득한예법한권의책으로남겨 뷺후임참봉과성손들에게유익한자료가되었으면븣뷻 박영택참봉이 자료집을소개하고이임하는동료참봉과 함께하고있다.(사진왼쪽부터 박종일,박병영,박동준,박영택,박영환참봉) 유후당 안동권씨는 대제학 제( 퇀)의 따 님 으 로 조 부 는 고 려 말 조 선 초 대 학 자 로 이름난 문충공(文忠公)권근(權近,13 52년~1409년)이다. 함양박씨 중시조 상서공(휘 善)의 11 세(世) 의손(義孫)의 부인으로 시아버지 휘 습(習)은 공민왕 16년(1367년)에 출 생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자헌대부(資憲 大夫)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냈다. 태종15년에 전라도 관찰사로 김제 벽 골제를수축하고강원,경상도관찰사,대 사헌,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태종과 동 갑이고 동방급제(同榜及第)하여 태종의 신임이 두터웠는데 애석하게도 당시 병 조참판 강상인이 도성의 금위영군사 이 동을 상왕의 재가없이 이동한데 연루되 어 영의정 심온, 도총관 심정, 참판 강상 인과 함께 세종즉위년에 화를 입으면서 집안은몰락한다. 태종11년(1411년 辛卯)에 문과에 급제 하여 사헌부 감찰을 지낸 남편이 1418년 (戊戌)아버지와 함께 화(禍,조선왕조실 록 참조)를 면하지 못하고 남해로 유배되 어 참화를 당하고 백중씨(伯仲氏)의 부 인들이 고향 함양 안의로 내려가며 동행 하기를 권유하나 권씨 부인은 “궁벽한 시 골에 가 있으면 박씨 가문을 재흥(再興) 키 어려우니 서울에 남아 기회(機會)를 기다린다.”하고 따라가지 않고 어린 아들 신동(信童)을 데리고 살면서 가세가 빈 약함으로 삯바느질을 해가며 아들교육에 전념하여 어린 아들 신동은 어머니의 뜻 을 받들어 부지런히 학업에 힘써 마침내 종사랑에 오르는 등 대성(大成)하여 가 문을부흥시켰다. 사장당 전의이씨는 조선 제2대왕 정종 의 다 섯 번 째 부 인 숙 의 윤 씨 의 따 님 인 천 옹주(仁川翁主)와 부마 이관식(담양부 사)의 사이에서 1447년(丁卯, 세종29) 태어나 종사랑을 역임하고 이조참판에 증 직 된 휘 신 동 ( 信 童 ) 의 둘 째 휘 중 검 (仲儉)과 1466년(丙戌, 세조11) 혼인하 였다. 휘 중검(仲儉)은 세종30년(戊辰, 1448 년)에 태어나 1489년(己酉,성종20)에 사 마시(司馬試)에 오르고 정종의 외손서 (外孫쉔)가 되기 때문에 병절사맹(秉節 司猛)을 지냈다. 149 8년(戊午, 연산4)년 에 돌아가시니 향년 50세이다. 세 아들을 두었으니 세영(世榮), 세무(世茂), 세옹 (世죕)이다. 이때 전의이씨의 나이 51세이고 장남 세영(世榮, 구당공) 19세, 차남 세무(世 茂, 소요당공)는 12세, 삼남 세옹(世 죕, 명헌공)은 6세로 철부지 아이들이 학업 에 게을리 하면 남편(이판공) 묘전(墓 前)의 동자석(童子石)에 손을 매어놓고 종아리를 치며 훈육하여 마침내 아들 3형 제가 대소과에 급제하여 가문의 영화(榮 華)를보게되었다. 사장당 이씨는 1553년(癸巳, 중종 28) 년 돌아가시니 향년 87세이다. 유언으로 내 제사에는 냉수를 떠 놓고 지내라하였 다.이는 아녀자의 몸으로 남편 없이 어린 3형제 훈육을 하는 동안 냉수로서 시름을 달랬기때문인듯하다. 한편 이번 당호 봉정과 의덕비 건립은 2014년 정기총회에서 현 동인 회장과 중 현 재경종친회장의 주청으로 수차례에 걸친 의논 끝에 조형물과 업체선정 등을 걸쳤고, 종친회 동수(전북 고창) 고문이 비문을지었다. 뱚1면에서이어짐 제막식에참여한 임원진이 기념촬영을하고있다. 참봉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생소하게 들릴 만하다. 조선시대 에나 통용되는 단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참 봉의직책은지금도계속이어진다.신라시조왕을비롯한 각왕 릉과 조선시대 왕릉 등 현존하는 왕릉에는 참봉을 두어 수직케 하고있다. 참봉은 조선시대 여러 관서에 두었던 종9품직의 벼슬로서 관 상감, 군기시, 군자감, 내의원, 돈녕부, 봉상시, 사역원, 사옹원, 사재감, 사직서, 선공감, 소격서, 예빈시, 오부, 전생서, 전연사, 전옥서, 전의감, 제용감, 종친부, 혜민서, 활인서, 각릉(各陵), 각원(各園),각전(各殿)등에 소속되어 있었다.초기에는 9품관 을두지않았다가,1466년(세조 12)1월 관 제 개 정 때 9 품 관 을 모 두 참봉이라 했으며 제릉(諸陵)· 전직(殿直)도 참봉이라고 불 렀다. 1874년우의정박규슈(朴珪壽)는숭덕전(崇德殿)참봉(參奉) 이 60삭(朔)으로서 즉 60개월을 봉직하면 6품(品)으로 오르도 록 장계(狀啓)를 올려 임금의 윤허를 받아낸 사실이 있듯이 품 계를3품을올려주었다는것은그만큼중요한직책이기도하다. 전·릉 참봉의 도임절차는 엄숙하고 그 절차 또한 까다롭다. 참봉으로선임을통보받으면철저한준비와참봉으로서소임을 다하기위해전임참봉으로부터그법도를전수받는다. 도임식 날은 새벽 동이 틀 무렵 숭덕전을 시작으로 향을 받들 며고유봉심을올린다.숭덕전전참봉의경 우이자리에서전인 (殿印, 옥쇄)을 넘겨받는다. 이후 오릉(시조왕, 알영왕비, 남해 왕, 유리왕, 파사왕), 일성왕릉, 지마왕릉, 아달라왕릉, 신덕왕 릉, 경명왕을, 경애왕릉 순으로 고유한 후 본격적인 도임식 행 사준비에들어간다.도임과함께2년의임기동안숭덕전전참봉 은 예빈관의 숙소에서 상주하며 365일 숭덕전을 수직하고, 나 머지 릉 참봉은 초하루와 보름날에 봉심을 올리고 능을 살핀다. 또,추석,동지설날,정월보름에는다례행사를갖는다. 봉심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릉(陵) 주위를 보살피고 봉심(奉 審)을1일일과로하고있다. 참봉의 직책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있으나 결코 그렇게 보 아서는 아니 된다. 개인으로는 가문의 영광이기도 한다. 그렇기 에 도임식 날 가족친지들로부터 헌수와 함께 축하를 받으며,종 친들로부터는예우를받기도한다. ‘참봉( 핫 奉)은누구이며그역할은’ 새벽 5시숭덕전봉심에나서는참봉 ‘임기 동안 능을 수호하고 삭망과 다례에 봉심’ 뱚도임창봉프로필 최근 많은어르신들은 후세들이 위선사업을 과연 할 수있을 까 말합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뿌리를 알기위해 인터넷을 검색해봅 니다. 아쉬 운 점은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젊은이 들은 족 보를모르고, 족보를 잘알고있는분들은 인터넷을모른다는것 입니다. 한빛신문은이를극복하기위해성손여러분과 함께 선 조님의행장과 약사를데이터화하여젊은청년들에게전달하려 합니다. 선조님과 관련된 자료를 제보하여 선조님 현창사업에 동참하여주시기바랍니다. 제보및구독신청안내: 053-588-7300, 070-4250-0078 fax 0 53-581-0067. e-mail:parkss1012@hanmail.net 한빛신문은성손여러분모두가함께만들어가는 500만박씨종중의정론지입니다 뷺신문은 성손여러분이 납부하여 주신 구독료 로 만들고 있습니다. 2016년 구독료를 아직 보 내지 않은 분은 구독료를 보내주시어 더 발전 하는신문을만들어주세요뷻 ※성손여러분이납부하여주신 소중한구독료는신문발행에큰도움이됩니다. 453013-55-000691농협한빛신문 박철규(朴哲圭) 1950.11.27 본관 密城(密陽) 경북청도군이서면 대구대학교상경대학경제학과 동원건설대표이사(1983~1997) 현금곡산업건설회장 뱚▲시조왕릉참봉 박남현(朴湳鉉) 1947.11.8. 본관 密城(密陽) 대구수성구만촌로 대구대학교사회개발대학원 청도군청 근무(1971~1980) 대구광역시청근무(1980~2004) 공무원 정년퇴임(2004.12.31) 뱚▲남해왕릉참봉 박진선(朴鎭善) 1951.2.5 본관 密城(密陽) 부산북구덕천로 부산공업고등학교 국제상사 기술부(1975~1980) (주)한신기업 관리부장(1980~ 1996) 부산북구지부장(현) 부산본부부회장(현) 한빛신문명예기자(현) 뱚▲유리왕릉참봉 박재동(朴在東) 1949.3.12. 본관 密城(密陽) 강원도삼척시미로면 삼척 미로초등학교(한학과정 수료) 강원도본부이사(현) 강원도삼척시지부사무국장(前) 밀성박씨전국청년회지도위원(현) 밀성박씨대종회이사(현) 임업(林業)종사(현) 뱚▲파사왕릉참봉 박철균(朴哲均) 1945.5.9. 본관 密城(密陽) 전북전주시덕진구호반5길 전주일송중학교 1964년 군입대 1998년 육군 원사 예편 상이군경회 전북지부 지도및 총무부장(2001~2005) 밀성박씨행산공파이사(현) 밀성박씨전국청년회지도위원(현) 밀성박씨대종회이사(현) 뱚▲지마왕릉참봉 박무흠(朴武欽) 1947.5.13. 본관 密城(密陽) 대구수성구용학로 영남대학교 서울특별시청근무(1978~198 8) 삼립식품 영남본부장(1998~1 992) 새누리당수성을부위원장(1994~2008) 뱚▲신덕왕릉참봉 박진석(朴晋奭) 1942.5.5. 본관 密城(密陽) 전남순천시해룡면 여수중학교 한학3년수료 호남정유 여수공장(1968~197 1) 한국전력여수화력반장(1972~1976) 동아건설(주)해외사업부(사우디,1977~1979) 뱚▲경명왕릉참봉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