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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82 강조하고있다.학지광을식민지출신유학생들이지닌고민을 해소할‘청량신선한무한복음’에비유하였다.나아가조선의신문 화와학문을육성시킬도구로생각하였다.현진이졸업한후에도 『학지광』과인연이계속되었던것으로보인다.숙부윤상은이 이잡지에광고를게재하고있는것으로봐,경제적인지원을하 고있었던것같다.한편현진은1915년경일본에서金綴洙와비 밀결사를만들었고,1916년초에도김철수,정노식,장덕수및중 국인들과新亞同盟團을결성하였다.이런상황을고려할때현진의 귀국은1916년으로봐야할것이다.學之光제10호(卒業生祝賀號, 1916년9월)에정리된졸업생기부금명단에현진이포함된것에 서도확인할수있다. 구명학교생활과일본유학을통해현진은민족주의의식이강화 되었고,조국의독립을위해실천적인활동을시작하였다.그것이 유학후대동청년단활동이었다.한말계몽단체들은점차조선의 식민지화가노골화되는1910년을전후하여비밀결사운동으로전 환하였다.1909년백산안희제를중심으로영남지역지식인들이 조직한대동청년단이대표적이었다.안희제는한일합방과신민회 사건으로망명생활을했는데,1911년모스크바와만주를거쳐 1914년귀국하였다.그기간동안그는만주와러시아지역에서독 립운동가들과만나독립자금조달과인재육성,국내와국외의연 락책임등을논의한후이를실행하기위해다시국내로들어왔 다.이때조선국권회복단과백산상회가조직되면서이를기반으 로하는많은인사들이대동청년단에가입하였다.1916년일본 유학을마치고귀국한현진도이즈음대동청년단에서활발하게 활동했던것으로보인다. 대동청년단은국내독립운동의거점과자금조달을위해상업 회사를조직하였다.1910년대중반이후1차세계대전의경기를 타고부산의상업은발달하였다.특히경남의지주들은이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