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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28 25일출옥이후에도집필은계속되었다. 1969년말에이르러서는경남양산에소재한개운중학교를인 수하여‘민족사와인간사의대도에입각한생산자적인지용(仁智 勇)영재의육성’을목적으로한민족교육사업을전개하였다. 1971년에는祖國史의分裂과統一의主潮를출간하여‘성리학 은반민특권의철학’이라는점을주장하였다.1973년에는이의 연장집필물로써최종교정과조판까지마친옳은史學과그 嶺南및그祖國의認識을위하여(山水李鍾律著作資料集제1 집에수록)를발표하였으나,인쇄직전에수사기관에의하여압수 당하게된다. 1974년에는경남의령의독립운동가백산(白山)안희제(安熙 濟)의사적을조사하고인혁당관련사건으로사형당한같은 마을의이수병본가를방문하고돌아오던중뇌졸중으로쓰러진 다.그는세상을떠나기까지16년간의오랜투병생활가운데서 도민족혁명운동의전개를위해노력하고,여러젊은학도들을 교육함과아울러己未를알자(1979)를비롯한많은미발표원 고를직접집필혹은대필로써남기게된다. 이종률은1989년3월13일민족혁명과인간혁명방향의역사 발전노선이라는“민족건양사로(民族建揚史路)”와이의실천을 위한전위당인“사책당(史責黨)“이라는말을마지막으로남기고, 부산동래명륜동수곡의자택수일원(秀一苑)에서향년87세의 일기로운명하였다. 민족혁명론의 정립 이종률은일생의민족운동을통하여민족론철학에바탕한민 족혁명론을정립하였다.후진성지역에서정치노선의혁명적세력 화를위한기본조직을사책당(史責黨)이라하였다.민족혁명은 인간혁명의정인간사(正人間史)적방향으로역사가발전하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