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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30세손 완산군 전집의 9세손 증이조판서 요계 전치원 선생 20세손인 5대독자 영문의 부인이 되었다. 유인은 19세에 6대독자 상용을 낳고 23세에 부군을 잃었다. 유인에게 남은 것은 늙으신 시부모와 4세된 어린 아들과 모진 가난이였다. 유인은 일시적으로 생을 포기할 생각도 갖었으나 역경을 이기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참다운 삶이라 생각하고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린 자식을 선양하여 전씨 가문을 중흥시키기로 결심했다. 낮에는 남의 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품팔 곳이 없으면 나무를 하여 팔고 밤이면 길삼을 하여 시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한결같이 봉양하여 생사장제에 유감없이 최선을 다하였다. 6대독자 상용을 애정과 정성을 다쏫아 효성스럽고 근면하고 성실한 장부로 성장시켰다. 유인이 기간 격은 신산고초는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행의 연속이였으나 유인은 용기를 내여 조금도 굴하지 않고 부도를 닦고 당당히 살아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드니 6대독자 상용이 기산하여 유인을 효성으로 모시고 손자 8남매를 양육했다. 손남에 정환, 태환, 점환, 기환이요 손녀는 연안 차성호 파평 윤외식 성주 이응헌에게 출가했다. 서기 1994년 8월 14일 손자 8남매가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95세로 운명했다. 유인의 체백은 묻을 수 있어도 유인의 꽃다운 행실과 영명은 묻을 수 없다하여 유인의 효행과 절의는 만인의 사표가 된다고 초계고을의 공의로 확정되어 성균관에 품신하여 서기 1994년 9월 22일에 성균관장의 효열부표창을 받았다. 이는 전씨가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우리 고을의 영광이다. 충효열은 만고에 변함없는 대의이며 인간이 실행하여야 할 최선의 덕목이다. 적선지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