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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전주이씨 효령대군 15세손 창우의 아들로 서기 1878년 7월 15일 괴산군 청양읍 둔덕리에서 출생하시었다. 천품이 너그럽고 의협심이 강하며 기골이 장대하신 공은 인근에 널리 알려진 칠척장사로 평소에 이르시기를 마혁과시함이 남아의 길이라 주창하셨으니 지순지결하신 고조는 가히 대장부의 표상이라 하겠다. 이렇듯 남달리 기개가 높으신 공은 경술국치 이래 이 땅에서 육량하는 왜구에 비분강개하시다가 기미년 3월 마침내 내어뿜은 민족적 망릉으로 혈풍혈우가 전국토를 휩쓸자 3월 30일 청안장날 이태갑 등과 기고를 함께 잡고 수천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항적필사의 정신으로 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시며 주재소와 우편소를 습격 투석전을 벌이셨던 바 선봉장이신 공은 청주에서 긴급출동한 왜헌병들의 흉탄에 쓰러지시고 군중도 해산되니 공의 구국충정과 대지는 이루어지지 못한 채 향년 19세에 영산의 혼이 되고 말았도다. 오호통재라. 생각할수록 유매의 거를 자아내도다. 이제 수많은 성상이 바뀌어 공의 열혈은 찾을 길이 없으나 공의 천읍지애할 거적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며 웅맹탁특하신 용개는 자손만대에 귀감이 되리라. 사손 강규 근찬, 서기 1977년 12월 13일 대통령표창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