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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라는 격문을 발송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제의하였 다. 한편 국망을 전후한 시기에 순절로써 구국의 의지를 표출한 인물들이 있 었다. 홍명희의 부친인 홍범식은 금산군수로 재직 중에 국망의 소식을 듣 고 금산의 조종산(祖宗山)에 올라가 목매 죽으니 전국 360여 군수 중에 유 일한 순절자가 되었다. 을사조약 파기와 을사오적 처형을 건의했던 연기 출신의 오강표(吳剛杓)는 1910년 국치를 당하자 순절하였다. 논산군 연산 의 이학순(李學純)과 두마의 김지수(金志洙)는 일제의 은사금을 거절하고 자결하였다. 공주 유생 이철영(李喆榮, 1867-1919)은 “차라리 죽어 조선 의 귀신이 될지언정 살아서 일본 백성이 되지 아니하겠다”고 하면서 일경 들의 협박에도 민적을 거부하였다. 수차에 걸쳐 옥고를 치른 그는 1919년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