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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한 시가전을 감행하면서 방어했으나 결국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많은 사상 자를 내고 패퇴하였다. 이 전투에서 참모장 채광묵 부자와 운량관 성재평 과 전태진ㆍ서기환ㆍ전경호ㆍ이재형(李在衡)을 비롯하여 300여명 이상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병은 80여명이 체포되었으며 그 중에서 유병 장 유준근을 비롯하여 이식·안항식 등 9명은 대마도에 유배되었다. 박창 로 등 체포를 면한 의병들은 청양의 오서산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계속 전 개하였다. 충남지역에서의 의병투쟁은 홍주의병 외에도 서산 당진 등 서해안 지역 과 공주·논산·연기·대전 등 계룡산 일대의 산악지대에 걸쳐 지역별로 소규모의 부대를 편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중에 당진의 소난지 도 의병은 1백여 명이 전사하여 단일전투로는 홍주의병 다음으로 큰 희생 을 치룬 의병으로 알려진다. 소난지도 의병은 홍원식이 인솔하는 1백여 명 으로 구성된 항일부대이다. 당진 대호지의 소난지도에 근거지를 두고 해상 으로 당진일대의 육지에 상륙하여 일본주재소나 관아를 공격하였으며, 친 일파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밖에 당진, 서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으로 정주원과 최구현이 있 다. 정주원은 고종황제가 강제로 폐위되고 구한국 군인이 강제로 해산된 직후인 1907년 8월 죽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경기도 지역과 충청 1906년 홍주의병의 홍주성전투 기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