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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 1) 한말 국권회복운동 한말 국권회복운동은 의병투쟁과 애국계몽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양반 유생을 중심으로 한 한국 민중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민족의 생존권 회복을 위한 반침략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위정척사론에 입각하여 서양 세력과 그 아류가 된 일본의 침략에 항쟁하였다. 러일전쟁 의 발발과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 등 일제의 침략에 분노한 시민들은 서울 과 도시를 중심으로 항쟁을 벌여 나갔다. 의정부 참찬 이상설을 비롯한 많 은 관료와 유생들은 고종에게 조약문에 서명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민영환·조병세·송병선 등은 자결로써 일제 침략에 항거하였고, 나인영은 을사조약에 찬동한 대신들을 처단하려는 을사오적암살단을 조직 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개화지식인들은 각종 단체를 조직하고, 신교육 및 실업진흥을 통해 실력을 양성하고자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안창 호 등이 설립한 신민회는 대표적인 애국계몽운동 단체였다. 신민회는 근대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주의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회사를 설립하여 민족 산 업의 육성에 힘썼다. 애국계몽운동가들은 국내에서의 항쟁이 어려워지자, 만주의 삼원포와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마련하여 장기 항전을 준비하였다. 한말 충남지역에서도 의병투쟁과 애국계몽운동, 그리고 자결 순국투쟁이 전개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의병전쟁이 두드러짐은 충남지역 독립운동 의 특성이다. 충남지역에서의 의병투쟁은 1896년과 1906년에 전개된 홍주의병이 대 표적이다. 홍성 출신의 김복한은 문과에 급제하고 승지로써 고종을 보필하 였으나 청일전쟁 후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하자 1894년 6월 관직을 사퇴하 고 낙향하였다. 그는 을미사변과 단발령의 공포에 일제와 매국적 개화정권 과의 일전을 결행하기 위한 의병투쟁을 계획하였다. 김복한은 이설과 홍건 을 만나 의병을 일으킬 것을 협의하였으며 관찰사 이승우를 만나 거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