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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의숙에서는 1914년에 흙벽을 수리하고 성현들의 글씨를 모사해서 문설주 위에 붙였는데, 명나라 의종의 글씨인‘비례부동(非禮不動)’은 마루 가운 데, 우암 송시열의 글씨‘천입(闢入)’은 동쪽 협실에, 주자의 글씨‘연비 (鳶飛)’는 서쪽 협실에 붙였다 한다. 남상혁은 이에 대하여‘연비(鳶飛)’는 주공이 문왕의 덕을 형용한‘연비어약(鳶飛魚躍)’의 줄임말로 도의 본체이 며, ‘벽입(闢入)’은 이단을 물리치고‘사도’에 들어간다는‘벽이단 입사문 (闢異端 入斯文)’에서 따온 말로 도의 용(用)이고, ‘비례부동’은 수신의 근 본이요, 경학의 근본이 되는 뜻이라면서 자신들이 서당에서 놀고 배우면서 이를 보고 마음에 공경하지 않음이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이철승 은 훈장으로 초빙되어 문설주에 명 의종, 주자, 송시열 등의 친필을 모사하 여 붙이는 등 의숙의 학풍을 쇄신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도호의숙 학생들이 서구에 대한 이해를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 었다. 남상혁이 쓴‘20세기태평양론’이라는 글은 이미 세계의 변화상을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을 비롯한 서양 제국이 지중해를 지배하고 다시 대서양으로 세력권을 넓혔으며, 20세기에 들어서는 태평양으로 치닫 고 있다고 보았다. 서구 열강들이 태평양을 가지고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 다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 황인종이 이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남상혁은‘만국통상조약서’에서 통상조약이라는 것이‘나라를 멸망 시키는 새로운 법’이라는 음빙자(飮氷子, 중국의 梁啓超를 말함)가 한 말 을 인용하면서 서구 제국의 이른바 차관이라는 것이 결국은 토지를 인질로 삼아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임을 피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