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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 라고 하여 그는 신학(新學)은 물질을 다루고 재예의 응용에만 자세하여 강상의 대도를 알지 못한다고 하여 구학(舊學)이라 하는 유학과는 근본적 으로 다름을 주장하였다. 단지 신, 구학이 가르치는 순서에서만은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글의 끝 부분에서“같지 않다는 것이 있다는 것은 한갓 부 국강병만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신학이‘부국강병’만을 안다라고 신 학을 비판하였다. 또한‘중화민국치발론(중화민국이 머리를 깎은 것에 대한 논)’에서 중화 민국이 성립되어 머리를 깎은 것에 대하여 이는 의리를 해친 것이라고 비 판하였다. 또한 그는 이 글에서 세계 각국이 모두 머리를 깍는데 우리 홀로 보존하여 업신여김을 당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여 옳으면 다른 사 람의 업신여김을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부국강병 만 알고 있다면서 이제 인도(人道)는 거의 없어질 것을 염려하였다. 이철승의 문하에서 수학한 조종업 충남대 명예교수가 최근『학산하과선 鶴山夏課選』(문진, 2006)을 간행했다. 이 글은 그가 1948-1950년간 이 철승한테 수학한 내용을 모은 것으로, 이 역시 이철승의 유학 사상을 이해 하는 좋은 자료이다. 도호의숙 학생들이 유진하와 이철승 같은 유학자들로부터 철저한 척사론 을 수학하였음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의 문인들이 그의 문집인『직암집』을 발간했는데 그 서문에서 (선생께서는) 경서에 돌아가 연구하시면서 양의 기운이 한가닥 맥이라 도 배양하고 사문에 한오라기 줄이라도 붙들어 심으실 것으로 말년에 필 생의 계교로 삼으셨다. 라고 이철승의 학문적 태도를 회고하고 있음은 이를 잘 말해준다. 또한 남상혁이 쓴「풍곡서사삼방기(楓谷書舍三 記)」에 의하면, 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