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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19) 『暴徒編冊』, 韓暴通 제234호, 1908. 11. 9 (『 한국독립운동자료집』 19, 176쪽).『조선폭도토벌지』, 1908년 충청남도 양도에서의 토벌- 충청남북도 토벌 개황표 (『독립운동사자료집』3, 762쪽). 20) 『暴徒編冊』, 忠南警收 제1121호, 1908.12. 28 (『한국독립운동자료 집』12, 607~608쪽). 주)가 입학하였다. 그러나 1908년 가을 정기호가 갑자기 가족을 데리고 도호의숙을 떠나고 말았다. 이때 당진 지역에서 활동하던 申敬春 의병이 도이리 지역에 나타 나 군자금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의병들이 마을에 들어와 군자금을 요구하 는 행위에 정기호는 위협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1908년 가을에 당진 각 지에서 의병의 활동이 활발했다. 『폭도에 관한 편책』에 의하면, 11월 1일에는 의병 약 30명이 唐津分遣所의 헌병 및 보조원과 海美郡 桃李領(당진 西方 약50리)에서 교전하여 그 중에 12명이 전사하였다. 19) 라고 하여 1908년 11월 1일 당진에서 서쪽으로 50리 떨어진 도이령(挑李 領)에서 의병 약 30명이 당진분견소에서 파견된 일본헌병대와의 교전이 있었으며, 이 전투에서 의병 12명이 전사하였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어서 『폭도에 관한 편책』에서는 12월 16일에는 서산군 冬音岩面에서 해미·서산·덕산 일대에서 활동하 던 당진군 출신 申敬春 의진의 부하 尹聖八(당, 36세)이 체포되었다. 20) 라고 12월 16일에는 신경춘 의병의 부하인 윤성팔이 체포되었음도 알려주고 있다. 이 때 신경춘 의병이 도이리에 나타나 정기호를 핍박하였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