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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 좋기도 합니다. 김정보가 와서 평안하다는 소식을 전하니 무엇보다 다행 스럽고 위로가 됩니다. 저는 이역을 떠돌며 뜻했던 일을 이루지 못했으니 일찍 죽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습재와 함께 성옹의 행장을 꾸리셨고 들었 는데 너무나 다행스럽고 너무나 다행스런 일입니다. 이 일에 있어 제가 어 찌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마음은 있어도 해야 할 일을 어겼으니 죄가 더 없이 큽니다. 당신과 습재께서 사문의 뒷일을 잘 처리하시어 아울러 이 사 람의 큰 죄를 씻어 주시니 어떠한 감격이 이와 같겠습니까. 중국 소식을 듣고 일을 하려고 하는데, 정보가 상세히 말씀드릴 것입니다. 행장은 습노 와 함께 다듬기 바랍니다. 가슴 가득한 말을 지면이 좁아 다 쓰지 못합니 다. 오직 때에 따라 자애하시어 저의 바람에 부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국에 망명 중인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이 어취선(魚聚 善, 자: 升汝, 호: 喚醒)이 가족을 중국으로 망명시킨 일을 감격스럽고 잘 한 일이라고 어취선의 의기를 높이고,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과 함께 자신이 못한 성재 유중교(柳重敎)의 행장(行狀)을 작성하였음을 다행으로 여긴다며 문장을 다듬어 주기를 부탁하고 있다. 또한 중국 소식을 듣고 일 을 하려고 하여 신해혁명 이후의 중국의 정세에 대처하여 유인석이 어떤 활동을 준비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김정보를 보내어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전하겠다고 하였다. 이처럼 어취선은 화서학파의 유학자로 제천의병장 유인석과 긴밀한 연락 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 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도호의숙에서는 어취선을 강사로 모실 수 없게 되자, 1907년 11월에 대 흥에 사는 정기호(鄭嗜好, 자: 英哉, 본: 온양)를 초빙하여 학생들이 다시 학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해에 장촌에 사는남상찬이 입학하였으며, 다 음해인 1908년에 남상목(홍동 거주)·남덕우(홍동 거주)·남학우(전동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