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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3. 도호의숙의 강사와 학생 현황 도호의숙은 처음에는 남규희가 강학하였다. 이때 수학한 이들로는 정 직·정태·우희·영렬·상익·상범·상돈·상호·상윤·상학·상집·상 락 등 모두 12명이 확인된다. 남규희가 1902년 세상을 떠나자 그해 4월에 노재(魯齋) 이성구(李成九, 자: 禹昌, 본: 여주)가 초빙되어 강학하였다. 이 성구가 지도한 이들로는 1903년에 입학한 상주(마명동 거주)·상룡(반곡 거주)·승렬(정곡 거주)·상직(홍동 거주)·상혁(양촌 거주)·동우(전동 거 주)·기세(전동 거주)·천우(낙동 거주)·정갑(승호 거주) 등이 있다. 1904 년 10월에는 이들 중에 상익·상범·상돈·상집 등이 해미의 향교에 입학 하여 그곳에서 고정(顧亭) 임노병(林魯秉)의 지도를 받았다. 1905년에 상 훈(관동 거주)이 입학하였다. 1906년 2월에는 존재(存齋) 유진하(兪鎭河)를 선생으로 초빙하였다. 유 진하(1846-1906)는 경기 고양군 벽제 출신으로 1871년 성재 유중교를 가 평으로 찾아가 문하생이 되어 수학한 화서학파의 문인이다. 1881년 진천 으로 이주하여 이후‘문양선생’이라 호칭되었다. 유진하가 서산시 대산면 대로리로 이주한 것은 50세 때인 1895년 9월의 일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인 전교리 김약제(1856-1910, 호: 靑愚)의 주선 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약제는 서산 출신으로 1886년 문과에 급 제한 후 홍문관 교리 등을 역임하다가 1894년 관직을 사임하고 낙향한 인 물이다. 김약제는 유진하와 과거 시험장에서 만나 의기 투합되어 자신이 살던 대로리로 초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조방목』에 의하면, 김약제는 고종 23년 (병술, 1886) 경과 정시에 을과의 성적으로 급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유진하는 1896년 1월 유인석이 제천에서 의병을 봉기한 소식을 듣고 의병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으나, 정창용(이명: 鄭寅卨)을 유인석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