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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鎭河)를 초빙하여 강학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유진하는 1906년 8월에 부 인의 병 간호를 위해 돌아갔고 그 곳에서 역질에 걸려 죽게 되었다. 이후 정기호(鄭耆好), 심원성(沈遠聲), 이철승(李喆承) 등이 강학을 담당하면서 계승되어 왔다. 특히 1914년부터 이철승이 도호의숙의 훈장을 맡음에 따 라 새로운 전기를 맞기도 하였다. 도호의숙은 그후 의령 남씨 이외의 타성 도 모집하여 교육시켰다. 도호의숙은 1919년 대호지 만세운동 이후에는 도호학당으로 개칭되었으 며, 남상락·남상혁·남상직·남천우 등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 후에는 강습소로 개편되었다가 1930년대 초에 일제의 강압으로 폐쇄된 후 도이강 습소(桃李講習所)로 명맥이 이어지다가 1930년대 초에 이마저 완전 폐쇄 되었다. 도호의숙의 복원을 희망하는 지역 유지들에 의해 2003년 10월에는 도호 의숙의 옛 터에‘도호의숙유지비(桃湖義塾遺址碑)’를 건립하였다. 동리(東 里) 남중우(南仲祐)가 작성한 비문은 다음과 같다. 도호의숙 터 대호지면 도이리 (현재 일반주택이 세워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