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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 처형하는 등 강경책으로 이를 탄압하였다. 충남지방은 조선후기 이후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유학자들을 배출하는 등 주자학적인 학풍이 강했다. 그 중에서도 내포지역은 개항이후 위정척사적 인 학풍이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 내포지역 위정척사파는 김복한과 이설과 같은 남당학파(南塘學派), 최익현ㆍ유진하ㆍ윤석봉 등의 화서학파(華西學 派)가 대표적인 유학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홍성과 보령·서산 당진 등 내포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이들 학파의 학자들은 반개화, 반외세적인 태도를 견지한 측면이 강하다. 이들은 존화양이론에 기초한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 유학자들의 사상과 활동은 한말 내포지역 내 민족운동을 펼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1) 화서학파의 형성 화서학파는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를 종장으로 하여 경기·강원 일대에서 위정척사운동을 주도한 한말 대표적인 학파이다. 이항로는『송원화동사합편강목 宋元華東史合編綱目』, b벽사록변 闢邪錄 辨c등의 저술을 통해 화이론(華夷論)과 존화양이의 춘추정신을 체계화하 여 위정척사운동의 이념을 구축하였다. 그의 위정척사사상은 주리론적 이기이원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는 이(理)는 주인으로서 존귀한 것이 고 기(氣)는 객으로서 비천한 것이라는 이주기객론(理主氣客論)과 이존기 비론(理尊氣卑論)을 주장하여, 이와 기는 존재를 성립시키는 대등한 2원 적 요소이지만 양자는 존비귀천, 주객존망(主客存亡)의 차이가 있기 때문 에 서로 구별해서 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 있다. 이항로의 사후에 유중교가 제천으로 이주하면서 화서학파의 중심은 제천으로 이동하였으 며, 이로써 제천은 을미사변 후에 의병이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그런데 충남지역에도 화서학맥이 계승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경 기지역에 거주하던 최익현을 비롯하여 유진하·윤석봉·노정섭 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