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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Ⅱ. 도호의숙의 설립과 민족교육 1. 사상적 배경 조선은 1876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 되었다. 부산과 원산ㆍ인천이 개항되었으며, 조선의 대외 무역 규모가 갑 자기 확대되었다. 그러나 곡물이 대량으로 수출되었으며, 이에 따라 농민 층의 분해가 촉진되었다. 반면에 값싼 소비재의 유입으로 조선의 생산체계 의 붕괴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조선 사회에서 내적으로 미약하나마 성 장하고 있었던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따라 서 외세의 침략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은 민족 구성원의 생존과 직 결되는 중대한 문제였다. 충청지방의 지배층인 유학자들은 이러한 외세의 침략을 민족 존망의 위 기로 인식하고 내수외양(內修外攘)을 기본 틀로 하는 위정척사론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위정척사론은 19세기 중반 이후에 서구의 정치경제적 침탈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구체적인 운동의 형태로 대두되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의 체결이 구체화되면서 왜양일체론의 논리로 일본과 의 수교를 반대하는 상소운동이 일어났다. 최익현을 비롯한 척사론자들은 개항체제로 인해 조선 사회가 일본에 의한 반식민 상태로 전락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불평등한 조약의 체결을 반대하였다. 위정척사운동은 김홍집이 1880년 일본에서 가져온「조선책략 」을 조정에서 수용하자 전국 적으로 확대되었다. 1881년의 신사척사운동은 영남만인소 운동을 시작으 로 전국 유생들의 호응을 받아 경기·충청·강원·전라 유생들의 복합 상 소로 이어 졌다. 이 운동은 민씨 정권과 개화파를 공격하는 반정부 운동으 로 발전하였다. 정부에서는 주도자를 체포하여 유배를 보내거나 심지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