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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하였다. 도이리를 살펴볼 때 고분으로 미루어 의령 남씨와 여산 송씨가 장 거하였음을 알 수 있고 도이리는 남씨 집성촌이고 리내 애동(쑥박골)은 송 씨 집성촌으로 이어왔다. 도이리내 지명도 뜻이 깊다. 준마 기르던 마명동 이 말우리로, 궁시를 만든 전동이 살곶이로, 무예 닦던 궁평이 활우리로, 궁평 좌우에 동각골 서각골, 당시 동서에 궁각(弓閣)이 있어 연유된 지명 이다. 일제하 1930년경 도이섬을 중심으로 간사지를 개척함에 인구가 유 입하여 1980년도에 분구가 되었다. 충절의 고장 도이리에는 불천지위 충 장사 남씨양세 충신정려와 많은 사적이 있고 도호의숙(현 강당 터) 출신 후학 중 항일애국지사로 건국훈장과 대통령표창이 추서된 분이 20여명에 이른다. 도이리는 수백 년을 도이섬이라 불러왔고 도이섬이란 관창산 앞 딴 섬을 말하는데 원래 뜬섬이 변한 것이고 썰물 때는 육지가 되고 밀물 때는 뜬 섬이 되고 이 섬에 가득 핀 복숭아꽃, 오얏나무 꽃이 절경이었다 고 전해온다. 2000년 9월 도이1리 마을회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