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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라고 임금께 보고함으로 알려졌다. 선조는 이 사실을 전해 받고 친히 상 을 내렸다. 이에 반하여 다음 해 황해도 암행어사 윤효선은“장연 현감 남 이흥이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여기고 외람된 일을 마구 저지르는가 하면 또 조사한다는 구실로 백성들에게 징수하는 것이 매우 번다하였다”고 남 이흥을 비판하는 보고를 선조에게 올렸다. 그러나 이는 남이흥을 깎아내리 기 위한 것으로 실제 사실과는 다른 것이다. 남이흥은 32세에 비변낭이 되고, 33세에는 의주 판관을 제수 받아 3년 간 재임하였다. 그 기간 동안 변방의 많은 폐단을 일소하여 백성의 인심이 일신되었다. 이때 이이첨이 부윤으로 있었는데 그의 치적을 평가하였으며 남이흥이 용천 군수에 제수되어 떠날 때 그와의 이별을 서운해 하는 마음 을 다음의 이별시로 표현하였다. 남통판(南通判)이 용천으로 부임함에 송별함 내 성품은 편벽됨이 많은데 그대 재질은 유독 높이 뛰어났네 성을 지킴에는 대절을 함께 기약하였기로 부(府)를 나누는데는 번거로움을 덜었네 후일을 기다려 서주(西州)가 감화됨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북쪽 오랑캐의 교만함을 근심하리오 백성들의 뜻으로 도사(都事)를 사양하고 더 큰 벼슬을 꿈 꾸었도다 군사를 주둔한 것은 전략에 의하고 어진 이웃은 뛰어난 풍모를 우러러보네 떠나는 자리에서 몇 번이고 옷자락을 잡았는데 이별하는 회포는 술을 마셔도 씻을 길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