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page

174 | 방법원에서 태형 90도를 받아 같은 날 집행되었다. 1957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고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95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 다. 남영렬(南英烈, 1892-1971)은 1892년에 출생하 였고 주소지는 도이리 178번지이다. 어릴 때부터 도호의숙에서 수학하였다. 수료 후에는 남성희와 함께 유년부에서 한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대호지 4·4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왜경에 의해 보 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체포되어 4월 24일 서산경 찰서에서 태형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 다. 남윤희(南尹熙, 1882-1939)는 1882년 3월 27일 도이리 308번지에서 출생하였고 직업은 농업이다. 천도교 대호지면 북부지역 포교책으로 활동 하였다. 대호지 4·4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후 왜경에게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체포되어 4월 24일 서산경찰서에서 태형 90도를 받았 다. 1939년 2월 9일 향년 57세로 사망하였으며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려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남인우(南仁祐, 1886-1967)는 1886년 출생하였고 주소는 도이리 315번 지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대호지 독립만세운동에 청년들을 지도하면서 결의를 다졌다. 부서를 조직하고 시위에 소요되는 자금을 모금했다 한다. 거사 직후에 왜경에 의해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체포되었다. 5월 3일 구류되었고,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태형 90도의 판결을 받고 즉일 로 집행, 방면되었다. 출옥 이후에는 송재만 등이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할 남영렬 애국지사